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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Mar 01. 2024

나는 내일도 무언가 쓸 것이다. 왜냐하면...


 

  2월 12일부터  시작된 글쓰기수업의 마지막 글이다.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또다시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시간으로 돌아갈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마지막 날답게 오늘의 주제는 '나는 내일도 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다.


  그동안 나는 에세이  9편과  단편소설(초고) 3편을 썼다. 에세이라 하기도 소설이라 하기도 사실은 너무 부끄럽지만. 단편소설  중 2편을 퇴고해서 한 번씩 더 올렸고 오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완성한다면 에세이는 10편이 된다. 


  처음 시작할 땐, 내가 이렇게 주말을 뺀 3주 15일 동안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써낼 줄(글의 수준을 떠나서) 몰랐다.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나는 하루 한 개씩 주어진 주제에 최대한 맞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하루 동안 쓰고 고치고 마무리를 해서 올리고 있었다. 딱 한번 퇴고글을 제외하고 밤 12시 마감도 다 지켰다.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마감에 쫓기면서도 마감을 지켰던 그 습관이 남아 있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의 강사님의 피드백으로  어쩌면 나는' 좀 쓸 줄 아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착각이 아니기를...), 그러므로  쓰는 일을 계속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조심스럽게 갖게 됐다.

  특히 3편의 짧은 소설을 써냈다는 게 나는 무엇보다 뿌듯하고 기뻤다. 더구나 소설에 대한 강사님의 칭찬은 너무 과분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가족이 사는 빈농의 가정은 책과 거리가 멀었다. 교과서 외에 유일하게 집에 굴러다니는 책은 당시 티브이에 만화로 방송되던  '들장미 소녀 캔디'와  '남이장군'  만화책이었다. 어디서 누구의 손에 의해 우리 집 사랑방에 들어와 굴러다녔는지 모른다.   교과서 외에 내가 접한 최초의 스토리가 있는 책이었다. 나는 그 만화책을 끼고  살았다. 특히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주제곡과 함께 눈물을 뿌리면서도 활짝 웃는 밝은 모습으로 들판을 뛰어다니는 '들장미 소녀 캔디'는 나에게 아름답고도 슬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캔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캔디와 캔디의 착한 친구 '앤'과 캔디를 괴롭히는  ' 이라이자' 그리고 늘 셔츠 깃을 세운 모습으로 나오는 긴 머리의 잘생기고 멋진 캔디의 사랑 '테리우스'의 그림까지 따라  그렸다.  특히 캔디는 양쪽에 리본으로 묶은  풍성한 웨이브 머리와 콧등의 주근깨와 커다랗게 반짝이는 눈과 함박 웃는 커다란 입까지 거의 똑같이 그릴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기 시작했고 나중엔 순서를 정해 그려줘야 할 만큼  인기가 좋았다. 당시  학년초마다 작성하던 학생기초자료에는 빠지지 않고 '장래희망' 란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만화가'라고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만화가나 소설가'라고 써넣었다. 제대로 된 소설책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때였는데 나는 '소설가 '라고 써넣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내 막연한 꿈의 기원이었다. 

  

  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어느 안개가 자욱한 날 나를 찾아온 방문객이 있었다. 방문객은 안개에 싸여 보일 듯 말 듯 흐릿했다. 그는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방문객이 반가우면서도 불길하여 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그 사이 방문객은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다고 돌아서 가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방문객이 가끔 생각났다. 잊히지가 않았다. 그리워졌다. 그랬다. 나는 그 소설가라는 안개에 싸인 흐릿한 방문객을 짝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는 길고 긴 세월 동안 그 방문객은  잊히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정말 떠나가 버린 듯도 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또 가까이 와 있었다.  흐릿한 채로 내 삶을 감싸고 있었다. 특히 내 삶이 보잘것없이 허접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나는 그 방문객을 떠올렸다.  그는 가끔 나의 어지러운 꿈 속에 찾아와 내가 너의 진짜 꿈이라고 속삭였다. 버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살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그 방문객이 다시 찾아왔을 때 실망하여 다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를 잡아둘 수 있는 그의 두 친구 ' 독서와 습작'을 늘 곁에 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방문객이 다시 찾아오는 날,  나는  그때의 그 방문이 제대로 된 방문이었다고,  잘못 찾아온 방문이 아니었다는 고백을 꼭 듣고 싶어 졌다. 그때가 되면 그 방문객은 흐릿한 모호함을 벗어던지고 뚜렷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아마 무언가를 쓰려고 애쓸 것 같다. 아니, 무언가를  쓰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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