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가끔 나를 서운하게 한다. 대부분 나의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나는 그저 마음에서 본능적으로 우러나오는 지극히 평범하고 남다를 바 없는 관심과 애정일 뿐인 것 같은데 아들에겐 과도한 간섭이고 성가신 애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아니 솔직히 가끔은 나의 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좀 넘친다는 걸 인정한다. 세상 하나뿐인 자식임을 어찌하냐고 이해를 구하면서.
나는 2남 3녀 중 넷째로 자랐다. 든든한 아들도 살림밑천이라는 첫 째 딸도 너무 예뻐서 조바심이 나는 막내딸도 아닌 나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관심과 애정을 덜 받으며 자랐다. 더구나 잔병치레라고는 없이 건강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한창 바쁜 농한기 때는 끈을 기둥에 연결해서 개처럼? 묶어 놓고(물론 목이 아닌 허리에 묶어 놓았겠지) 밭일을 갔다 와도 혼자 그렇게 잘 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아흔을 바라보는 엄마는 신경은 좀 덜 썼지만 덜 사랑한 건 아니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랑 단 둘이 사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위로 언니 둘이 있었는데 둘째 언니랑 십 년 가까운 터울이 있었다.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그 친구랑 친하게 된 중학생 때부터 그 친구는 엄마랑 단 둘이 살았다. 그 친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다섯 형제들로 늘 북적이는 우리 집 분위기를 부러워했고 나는 엄마랑 단 둘이 사는 그 친구 집의 고요함 아늑함 적요함을, 그리고 혼자만 누리는 넘치는 사랑을 부러워했다. 친구는 늦둥이막내딸이어서 거의 외동딸처럼 엄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친구의 엄마는 밤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문밖에 나가 친구를 기다리며 서 계셨다. 스무 살이 넘어 그 친구가 결혼하기 전까지도 그랬다. 그 친구는 그런 엄마를 애틋해하고 감사해하면서 힘들어했다. 늦은 밤 늘 가로등 불빛 아래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달아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그랬다. 나도 너 같은 사랑받아봤으면... 세상에 서로에게 하나뿐인 듯한, 오로지 단 한 사람 같은... 그러면서 지나가듯이 말했었다. 나는 결혼하면 아이를 한 명만 낳을 거야. 그래서 누구랑도 나눠 갖지 않아도 되는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을 줄 거야.. 서로,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물론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아들 한 명만 낳은 건 아니지만. 이제 그런 사랑의 애틋함보다 더한 무거움과 무서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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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아들은 운동을 시작했다. 직장생활 일 년 동안 외식과 회식과 음주로 불어난 체중을 감소시키는 것을 첫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날도 아들은 땀에 흠뻑 젖어서 들어와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침 주방에 있던 나는 아들의 땀에 젖은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이마를 덮은 앞머리가 땀에 푹 젖어 있고 콧잔등에 땀방울이 커다란 여드름자국처럼 송글송글 맺혀 있고 물이 넘어가는 목울대에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아이고 이 땀 좀 봐...라고 말하면서 아들의 단단하고 축축한 엉덩이도 쓰담쓰담하면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키 186cm인 아들의 얼굴을 키 158cm인 내가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위로 꺾고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야말로생때같은 아들이니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건 당연한 것. 그날도 그저 그랬을 뿐인데, 아들은 물컵을 조금 거칠게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좀 쳐다보지 마...
맙소사...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로 정말로짜증 나고 성가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만 아니었다면 이 녀석이... 하면서 등짝을 장난스럽게 후려쳤을 것이고 아들은 엄마 내 나이가 서른이야 서른... 하면서 도망치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이 녀석아 서른 아니라 쉰 살이 되어도 넌 내 새끼고 난 니 에미다 녀석아... 하면서 유쾌하게 넘어갔을 것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일격을 당한 느낌이었다. 애정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것처럼 무참했다. 처음도 아니건만 나는 그만 또 삐치고 말았다.
나의 시선과 말투에는 아마도 대견함이나 뿌듯함보다 안쓰러움이 더 묻어있었을 것이고 아들은 그걸 참을 수 없었을 것임을 이해하면서도.
그날 밤 아들이 귀가하여 거실에 앉아 있는 나에게 엄마 나 왔어,라고 어색함과 다정함이 반쯤 섞인 말을 건네었을 때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심으론 아들이 다가와 내 맘을 풀어 줄 다음 단계의 제스처를 취해 주길 바랐다. 어깨를 쓰담쓰담해 준다거나 하는...
그러나 나는 멀어지는 발소리와 열고 닫히는 문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어쩌면 저런 건 지 애비를 똑 닮아서는...
웬수 같은, 비정한 강 씨들...
나는 혼자 이를 빠드득, 갈았다.
다음날은 주말이었다. 오전 운동을 나간 아들은 햄버거를 사들고 들어왔다. 같이 먹자고 불렀지만 나는 생각 없다고 소파에 얼굴을 묻고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햄버거를 들고 와서 먹으라고 내밀었을 때도 안 먹겠다고 꿈쩍하지 않았고 아들이 한 번 더 와서 햄버거를 내밀었을 때는 아들이 전날나에게 한 짜증을 되갚아 주겠다는 듯 짜증을 냈다. 아무도 모르지만, 사실은 눈물도 한 줄기쯤 흘렀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 자신을 나무랐다. 에미가 돼가지고 뭐 하는 거임?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퇴사했어... 그 맘이 오죽하겠냐고... 우리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도 있을 거고... 맘 편하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다음 날 아침엔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남편을 차로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게 되었다. 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짜식이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냐고... 그랬더니 남편이 말했다.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니까 그러지...
뭐... 내가 뭐... 느끼하게 쳐다보냐? 애정을 갈구하듯이 뭐... 막... 부담스럽게?
내가 억울해서 대들듯이 말하자 남편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좀... 그렇지...
나는 이 말에 강력히 반발할 수가 없었다.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아들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월요일인데... 좀 빨리 일어나서 움직이지... 하는 잔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자꾸 나오려고 바둥거렸다. 이런 상태로 마주치면 서로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아 다시 집을 나와 천변을 걸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은 아들에 대한 서운함은 사라지고 온통 무얼 해서 먹일까가 지배하고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한다고 그동안 부실하게 먹은 것이 맘에 걸렸다.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녀석인데 닭가슴살 외에 고기를 먹은 지 한참 된 것 같았다. 저녁으로 먹기엔 다이어트에 방해가 될 터이니 오전에 고기를 구워 먹을까... 오랜만에 삼겹살로...라는 생각이 들자 곧장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은 운동 중이라고 했다.
고기 구워 먹을까?
지금?
저녁에 먹으면 다이어트에 안 좋잖아... 오전에 먹는 게 가장 안전해...
아들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 그래...
라고 대답했다. 꼭 선심 쓰는 듯.
트레이더스 열 시에 오픈하니까 기다렸다가 사서 들어갈게...
... 어...
삼겹살? 아니면 양념갈비? 아니면... 족발?
삼겹살...
그래...
그래... 내가 봐주마... 내가 졌다... 내가 어미니까... 나도 30분 동안 천변을 열심히 걸어 땀을 흘렸다. 오전 열 시. 막 오픈한 트레이더스에 가서 싱싱한 삼겹살을 샀다. 상추, 청양고추 마늘 부추 등 부재료는 집에 다 있었다. 먹다 남은 오이냉국도 있었다.
아들이 운동을 끝내고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식탁은 풍성하게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 놓았다. 나는 아들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슬쩍 엿보았다. 잘못 쳐다봤다간 또...
그렇게 해서 아들과 나는 오전 시간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 삼겹살은 아들이 구웠다.
삼겹살은 정말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마늘과 청양고추와 부추무침과 쌈장을 넣고 쌈을 싸서 입안 가득 넣고 씹으면 달짝지근하기까지 했다. 나는 또다시 아들을 느끼하게? 쳐다볼까 조심스러워 거의 눈을 내리깔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