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출근한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나는 닭가슴살샐러드와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켜고 내가 대표로 되어 있는 인터넷신문 '머니파워' 홈페이지의 메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메일함에는 국가기관, 자치단체, 기업, 은행, 방송국 등에서 보낸 홍보용 보도자료들이 가득했다. 이 많은 보도자료 중 무엇을 올릴 것인지는 아직 남편의 선택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에게도 감이나 안목이라는 것이 생기면 조용히 내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난 일요일에 남편에게 배운 대로 작업을 천천히 진행해 갔다. 제목과 부제목을 뽑고 딱딱한 보도용 본문도 최대한 부드럽고 쉽게 읽히도록 일부 수정했다. 보도자료는 각 언론사에 똑같이 보내지기 때문에 다른 언론사와의 차별화가 중요하다고 남편이 말했다. 특히 제목을 잘 뽑아보라고 했다. 수정하다 보니 너무 길게 늘어지는 것 같아 다시 줄이거나 원상복구을 하기도 했다. 이런 기사는 홍보 및 정보제공이 목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메일을 한글파일에 복사해 옮긴 후 수정이 끝나면 신문에 제목 부제목 본문을 따로따로 복사해서 올려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사진작업을 해야 하는데 메일의 보도용 사진을 신문에 옮기는 작업이 나에겐 아직 복잡하고 어렵다. 캡처도구를 이용해서 캡처한 후 바탕화면에 저장했다가 다시 신문으로 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어제 배운 대로 아무리 해도 옮겨지지가 않았다. 근무 중인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들도 집에 없었다. 클릭 한 번 잘못했다가 지금까지 어렵게 작성한 글이 통째로 날아간 적도 많았다. 또 구형인 노트북이 잘못될까 함부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도 겁이 났다. 혼자서 거의 오후 5시까지 끙끙거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기사는 했는데 사진이 안되네... 캡처도구로 하는 거까지는 했는데 다음 단계가 안돼... 아들은 전화도 안 받고...-
남편은 바쁜지 답이 없고 대신에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집 근처 커피숍에 있던 아들이 잠깐 오겠다고 했다.
킥보드를 타고 왔는데도 아들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잠깐 소강상태의 날씨는 불볕더위였다. 나는 집안에서 새롭게 부여된 일에 몰두하느라 날씨가 그렇게 더운지도 모르고 있었다. 미안해진 나는 거의 징징거리는 말투가 되었다.
"여기 봐봐... 하라는 대로 이렇게 이렇게 했잖아... 근데 여기서 안돼... 아무리 해도 안돼... 왜 그런 거야?"
선 채로 땀을 훔치며 내 말을 흘려듣더니 한 손으로 내가 놓은 마우스를 쥐었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작업을 끝내버렸다. 내가 몇 시간을 붙들고 이리저리 해 보아도 꿈쩍을 않던 사진이 아들의 한두 번 클릭으로 바로 신문의 제자리를 찾아 옮겨가 있었다.
"뭐야 이거... 된 거야? 됐네... 천천히 좀 해봐... 내가 배워야지..."
"엄마 이건 기본이야 기본 완전 기본"
"야... 기본은... 자판 빨리 치는 거지..."
무안하고 뻘쭘한 나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헤헤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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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도 뭐가 안 돼서 또다시 아들을 호출했다. 이번에도 아들은 한두 번 클릭으로 끝내버렸다. 무안함에 과장되게 놀라워하는 나에게 아들은 또 이건 기본이야 기본... 아주 기본... 하고 강조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남편이 오더를 준 자료를 한 시간 반 만에 무사히 신문에 올렸다.
이렇게 나는 그동안 미뤄오던 일을 시작했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런 홍보용 기사보다 내가 더 신경 써서 올리는 글이 있다.
바로 남편이 나를 염두에 두고 마련한 섹션 '세상이야기' 코너이다. 나는 세상이야기라는 코너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사는 이야기'가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고 말해보았다. 남편은 참고해보겼다고 했다.
남편이 세컨잡으로 인터넷 신문 얘기를 할 때부터 농담 삼아 남편에게 내가 쓴 글 올려도 되냐고 물었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긍정적이었다.
그동안은 자리 잡느라 경황이 없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니 시작해 보라고 했다.
고민고민하다가 이 브런치스토리에 브런치북으로 올린 '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를 연재로 올리기로 했다. 2년도 넘은 글이고 브런치에서는 거의 외면당한 글이어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운전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일이고 더 늦으면 완전히 사장될 글이기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다시 읽고 거듭 퇴고해서 지금 4회까지 올렸다. 다행히도 '많이 본 뉴스'에 3회가 올라와 있고 조회수도 다른 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정치 경제 분야 홍보용 정보제공의 글들 사이에 난데없는 신변잡기 글이 떡하니 올라와 있으니 호기심에서 읽어보는가 싶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1회 조회수가 가장 많고 갈수록 조회수가 줄어들고 있다. 다행히 이 브런치에서 외면당하는 글에도 갑자기 폭발하는 글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내공을 길러 놔서 그리 의기소침해지지는 않는다.
남편이 인터넷신문의 기사를 블로그에도 티스토리에도 함께 올리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언제 이 많은 작업을 해 놓았는지 잠깐 남편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니까 나의 글이 브런치, 인터넷신문 '머니파워', 블로그', 티스토리에 올려지는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이렇게 해도 되나... 오만 군데 글의 오물이나 뿌리는 꼴은 아닌가... 나의 글에 대한 불신과 의심으로 온 밤을 뒤척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지금, 활기에 넘치고 있다. 혈관마다 새 피가 도는 듯 생기에 넘친다. 이것이 일의 힘인지 모르겠다. 하물며 그 일이 쓰는 일이 아닌가...내가 가장 원하는 일이고 그나마 잘 하는 일이고 무척이나 잘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가르치는 와중에 남편과 몇 차례 트러블이 있었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헤헤거렸다. 지금은 보도자료와 써 둔 글을 올리는 정도지만 앞으로 나의 일을 점점 넓혀가라고 했다. 예전에 했듯이 취재와 인터뷰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일주일을 이렇게 해보니 나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좋다. 읽기와 사색을 꼭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은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음을 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나의 계획에는 아주 없던 일이 아닌가.
새로운 출발선에서 출발신호를 받고 출발한 기분이다. 내 앞엔 이제 한 길 뿐이다. 느리고 서툴겠지만, 나아갈 수밖에....부끄럽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읽고 쓰는 일만은 게을리하지 않아야겠고...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을 티브이의 예능프로에서 들었다. 그 말이 너무 좋아 기억해 두었는데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