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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직원 불친절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

by 찌니
사진 : 픽사베이

지난 연휴 때 삼일 동안 몸살감기에 걸려 옴팍 앓았다. 두꺼운 겨울이불을 덧덮고 온도를 30도까지 올려놓았는데도 땀은 나지 않고 온몸이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으슬으슬 추웠다. 가끔씩 몸의 어느 한 구석에 대못이 박히는 것처럼 크고 둔하게 아프기도 하고 또 가끔은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것처럼 따끔거리기도 했다. 으으으으... 아파 아파... 하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독감예방접종 한 번 맞지 않고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한겨울도 거뜬히 지나왔는데... 오뉴월에 그렇게 아팠다. 전에 없이 일교차가 큰 날들이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서 감자옹심이가 먹고 싶어졌다. 오월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와 여러 번 갔었던 ㅇㅇ 메밀옹심이칼국수집은 집에서 천변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남편은 차로 이동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걷기를 원했다. 며칠 사이 체중이 2킬로 정도 빠져 가벼워진 몸으로 어느새 녹음이 완연한 천변을 걷는 기분은 상쾌했다.

식당이 가까워지면서 메뉴 얘기를 했다. 옹심이만 있는 메뉴도 있고 옹심이랑 칼국수가 반반인 메뉴도 있고 칼국수만인 메뉴도 있다고, 나는 옹심이만 먹을 거지만 자기는 국수 좋아하니 옹심이랑 칼국수랑 섞인 메뉴를 선택하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남편은 집에서 빵을 먹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처럼 아주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유명 맛집답게 그날도 식당 안은 손님들이 가득했다. 다행히 웨이팅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말이 맞지 맞지? 여기 유명한 맛집이라니까... 나는 괜히 의기양양해져서 식당에 들어섰다. 좌식 테이블이 다 차서 식당을 가로질러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입식 테이블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봐봐 손님들 엄청 많지? 유명 맛집이야... 특히 옹심이 국물이 너무 구수하고 뭉근하고 진해... 감자수프보다 더 맛있어... 저번에 오빠랑 가서 먹었던 옹심이보다 여기가 더 나아... 나는 음식을 먹고 있거나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꽉 찬 식당 안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홀서빙을 담당하는 낯익은 젊은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마른 체격에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마스크를 썼다.

"저는 옹심이만이구요... 자기는 옹심이칼국수 먹을 거지?"

내가 말했다. 낫지 않은 감기기운에 바람을 쐬어서인지 목소리가 두껍고 거칠고 힘들게 나왔다.

그때 남편이 메뉴판을 올려다보더니 메뉴를 칼국수만으로 바꾸었다.

"왜? 옹심이칼국수로 해... 여긴 옹심이 맛집이란 말이야..."

"아니야 그냥 칼국수로만 먹을래..."

"으이구 고집은... 그럼 옹심이만, 하고 칼국수요..."

네... 옹칼(?)하고 칼이요... 직원은 주문메뉴를 확인하고 선불이라고 했다. 나는 카드를 건네주었다. 직원은 카드를 들고 홀로 나갔다. 잠시 비어 있던 우리의 옆자리에 손님이 와서 앉았다. 우리와 같은 부부 같아 보였다.

먼저 보리밥과 열무 무생채가 나왔다. 맛있지? 맛있지? 열무랑 무생채 너무 맛있지? 난 정말 이건 안되더라... 아무리 유튜브 따라 해도 이런 맛이 안나... 아쉬울 정도로 적은 양이어서 우리는 더욱 맛있게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보리밥을 먹은 후에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주문을 받은 그 직원이 두 그릇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쟁반을 들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당연히 우리 테이블에 놓일 것으로 알았던 그 음식을 직원은 우리보다 조금 늦게 온 옆 테이블에 놓았다. 어? 우리가 먼저 왔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직원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말없이 바로 홀로 돌아갔다. 우리가 먼저 온 거 맞지?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홀을 향해 말을 해볼까 잠깐 망설일 때 직원이 똑같은 음식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우리에게로 왔다.


"어? 나 옹심이만 시켰는데..."

숟가락을 넣고 저어본 뿌옇고 뭉근한 국물 속에 반이 메밀칼국수였다. 나는 바로 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메뉴가 잘못 나왔어요..."

직원이 다가왔다.

"나는 옹심이만 시켰는데요..."

"제가 옹칼(옹심이+메밀칼국수) 하고 칼(메밀칼국수) 맞으시냐고 주문한 사항 되물어 확인했을 때 아무 말 없으셨잖아요."

마른 체격의 젊은 직원은 바로 잘잘못을 따지고 들었다. 직원이 메뉴를 확인차 물은 건 기억났다. 하지만 직원이 확인차 다시 묻는 말은 나는 흘려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옹심이만, 이라고 너무나 확실히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 백화점의 스넥코너에서 알바를 한 경험이 있다. 주로 주문을 받는 홀서빙이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메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직원의 말은 흘려들었을지 몰라도 옹심이만, 이라고 한 건 확실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확실했다.

"나는 틀림없이 옹심이만 시켰는데... 혹시 주문 바뀌지 않았나요?"

나는 옆 테이블을 보았다. 우리를 지켜보던 옆 테이블 손님은 제대로 나왔다고 했다.

"나는 틀림없이 옹심이만 시켰어요..."

나는 다시 한번 직원에게 말했다.

"손님 제가 틀림없이 주문하신 거 옹칼하고 칼 맞으시냐고 확인시켜 드렸거든요..."

직원은 조금 전보다 더 딱딱하게 말했다.

"아니... 나는 틀림없이 옹심이만이라고 시켰다구요... 틀림없이... "

내 목소리도 올라갔다. 감기가 다 낫지 않은 내 목소리에는 거친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저는 틀림없이 주문 내용 확인해 드렸어요. 그때 아니라고 했었어야죠..."

직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틀림없이 옹심이만 시켰다구요 옹심이만..."

나도 지지 않고 한번 더 되풀이 또박또박 말했고 직원은 다시 자신의 주장을 말하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언성을 높이는 다툼을 못한다. 하지 않는다. 피한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언성을 높여가며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그냥 두리뭉실 넘어가는 편이다. 얼굴이 두껍지도 않고 조리 있는 말로 상대를 굴복시킬 언변이 있는 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비는 대부분 목소리 큰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직원이 다시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려고 할 때 됐어요... 알았어요... 알겠다고요... 가서 일 보세요...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때 뒤쪽에서 손님한테 왜 이기려고 드냐고 옹심이 더 만들어 드리면 될 것을... 하는 나이 지긋한 여자의 책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직원은 홀로 돌아갔고 나는 국물을 휘저어 떠먹었다. 그래도 국물은 맛있었다. 옹심이도 살캉살캉 맛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님들은 꾸역꾸역 들어왔다. 빈자리가 생기기가 무섭게 채워졌다. 직원은 바빠졌고 우리는 식사를 했다. 나는 칼국수 사이에 있는 옹심이만 골라먹고 국물은 남김없이 퍼먹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시선으로 여직원을 쫓았다. 내가 노려보고 있다... 한번 불편해 봐라... 하는 심정이었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알 수 없는 여직원은 쉼없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우고 테이블 위의 컵이며 양념통들을 닦았다.


그래... 연휴에 계속 저렇게 일해야 하니 피곤하고 힘들 거야... 내가 이해해 주지 뭐... 근데... 이럴 때 내가 시킨 메뉴로 다시 해 달라고 하면 다시 해 줬을까? 아무튼 나는 옹심이만 시켰으니까 다시 해 주세요!! 그렇게 좀 세게 나가 볼걸 그랬나... 으이구... 바보탱이... 뭐... 직원이 확인차 묻는 걸 흘려 들은 내 실수도 있으니까... 나는 옹심이만, 이라고 확실하게 말했기 때문에 직원이 다시 확인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남편이 갑자기 메뉴를 바꾸는 바람에... 옹칼이니 칼이니 하면서 어수선하기도 했지... 감기로 목이 잠겨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동네 식당에서 품격 있는 서비스를 바라는 것도 무리지... 내가 아르바이트한 곳은 유명 백화점의 스텍코너였으니까... 서비스가 생명인 유명 백화점... 거기선 손님의 작은 컴플레인에도 무조건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었지... 백화점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 이런 시비가 붙었다면 바로 죄송합니다 고객님 다시 해서 드리겠습니다... 했겠지... 고작 11,000원짜리 감자옹심이에 그런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긴 하지... 하지만... 하지만... 좀 친절해도 좋지 않았을까... 죄송합니다 손님 다시 해 드릴게요... 만약 그랬다면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아니요 됐어요 그냥 먹죠 뭐...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국물을 떠먹고 몇 개 없는 옹심이를 집어먹었다. 메밀칼국수는 몇 젓가락 집어먹었을 뿐 먹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내 마음이 그리 상하지 않은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복수를 결심하고 있었 던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좀 통쾌해졌다.


"여기 옹심이 추가로 드세요..."


내가 메밀칼국수만 남겨놓고 숟가락을 내려 놓았을 때쯤 젊은 직원이 아닌 나이 든 직원이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됐습니다 안 먹겠습니다..."

"아니... 일부러 만들었는데... 드세요..."

"됐습니다. 안 먹겠습니다..."


그렇다. 사과의 뜻으로 다시 만들어 온 감자옹심이를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것이 내가 결심한 복수였다.


그렇게 거절하고 나는, 당당하게, 식당을 나왔다. 사실은 먹고 싶었지만.


내 소심한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조만간 친구랑 다시 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더욱 정확하게 주문할 것이다. 옹심이만요... 옹심이만... 옹심이만... 옹심이만요... 그러면서 그 여직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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