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화, 「수능 엿이나 찹쌀떡 사양합니다… 차라리 ‘무관심’을 선물해 주세요」, 『조선일보』, 2024.11.9.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둘은 모임에서 만나면 안부 정도 묻는 어색한 사이다. 두 달 정도 개인 사정으로 모임에 나오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이 전과 달리 꺼칠하고 푸석푸석해 보였다. 그녀는 최근에 안 좋은 일들을 잇달아 겪어서 지금도 마음이 시끄럽다고 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불현듯 친구에게 배운 마법의 말이 떠올라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 걸까요?"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말이 너무 위로가 되네요. 실은 오늘 모임에 나올까 말까 고민을 했었어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네요. 고마워요."
우리는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위로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위로보다 더 깊이 와닿는다.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다. 모임 멤버 중 한 분이 신문 기사를 공유했다. 그 기사에서는 센스 있는 수능 선물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사 마지막 줄 아래에 사진이 있고, 그 아래에 사진을 소개하는 글을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순간 마음이 출렁였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을 격려하기 위해 담벼락에 적은 문구였다.
'묵묵히 가던 길에 꽃이 가득 필 거야.'
그 문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날 밤 두 달 전에 응모했던 독후감 공모전 결과를 확인했다. 솔직히 이번 공모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내가 쓴 글이 기발하다고 생각했다.(어떤 부분이 기발했는지는 영업 비밀이므로 스리슬쩍 넘어가겠다.)
공모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일은 나에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실망감을 넘어 한심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시상식에 불참하면 수상이 취소된다는 공지를 보고, 미리 예약한 여행 날짜와 겹치면 어쩌나 하며 김칫국을 한 사발로는 모자라 김치통으로 마시고 있었다.
공모전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 공모전이라는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왜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시를 쓰며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신문 기사에서 위로를 받을 줄이야. 이렇게 묵묵히 글쓰기를 공부하고, 글을 쓰다 보면 나의 글에도 꽃이 가득 피는 날이 오겠지.'
수험생을 격려하려고 담벼락에 썼다는 그 문구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렇게 힘든 걸까요? 지금 묵묵히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당신과 그 길에 꽃이 가득 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