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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여덟 Feb 29. 2024

그릇과 껍질

세계와 흙덩이

  그릇을 키워라. 나라는 그릇을 키워 더 많은 물을 받도록. 그러나 나를 이루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고 그릇은 커질수록 얇아진다. 그러다 무거운 물의 무게를 버티지 못할 때 그릇은 부수어진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일이었나? 잡고 있지 못한 나를 욕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나를 헐뜯고, 종용한 남을 원망한다. 산산이 조각난 그릇을 껴안고.


  "알은 세계이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라고 했던가? 알껍데기도 점차 얇아진다. 안에 병아리가 영양분으로 사용하며 분해되고, 밖에서부터도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부식된다. 그러다 깨어진다.


  그릇의 조각들은 내가 담은 물을 잔뜩 머금어 찰흙이 된다. 흡수한 물만큼 커지고, 나의 조각들도 많아진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텐가?


  나를 이루는 그릇은 결국 알이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듯 얇아진 그릇을 부수고 더 많은 나로 더 견고한 그릇을 만든다. 넓혀간다. 더 많은 물을 받는다.


  릇은 결국 나이고, 담은 물도 나이며, 두 개가 뭉쳐진 흙더미도 나이다. 이걸로 무엇을 만들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모든 것이 나이듯, 세계로 규정한 알도 나이다. 둘러싼 알 또한 스스로 만들었다. 한때는 나를 지켜주었던 견고한 껍질은 성장해 버린 나를 옥죄인다.


  가만히 있으면 편하다. 성장을 포기하고 외부의 부름을 튕겨내면 안온한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죽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우리는 우리를 깨야 한다. 그릇도, 껍질도, 세계도 나아가 우리도 결국 깨뜨리고 새로운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 순환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멈추는 순간 죽는 것과 같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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