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830. 알라딘
작년에 마셨던 아라비아의 여름 트리오, 아라비안 나이트와 세헤라자드에 이은 마지막 차, 알라딘이다. 작년에 한 번에 시리즈 전체를 마시지 않았던 건 다른 마실 차가 많기도 했고 알라딘이 옛날부터 평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시음기도 잘 안 보이는데 한결같이 평이 그닥, 굳이, 뭐임 이런 반응이라 아직까지 발매가 되는 게 신기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넣어봤다. 어디 얼마나 별로인지 직접 마셔보고 판단해 보겠어. 50g 봉입에 650엔으로 6~8월 계절한정이다. 그렇다니까, 아라비안 여름 트리오인데 별로여 봐야 얼마나. 일단 나는 아라비안 나이트 너무 좋아하고 세헤라자드도 괜찮았으니까. 조금은 믿음을 줘도 되지 않을까. 상미기한은 제조 후 1년이고 여름한정답게 아이스티마크가 붙어있다.
녹..차가 아니고 허벌티네? 녹차베이스 가향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래서인지 레시피도 라벨색에 안 맞게 진하다. 머선 일.
료쿠챠 니 탓푸리 노 페파아민토 오 부렌도. 세이료우칸 아후레루 아라비안 스타이루 노 민토티이.
녹차에 듬뿍 페퍼민트를 블렌딩한, 청량감 넘치는 아라비안 스타일의 민트티.
엥, 녹차의 함량이 어떤 건지 더 모르겠는 설명. 홈페이지에선 설탕을 넣어도 맛있다고 달달한 아이스티 쪽으로 유도하는 걸로 보아 민트 에이드 느낌의 터키쉬, 모로칸 그런 쪽의 느낌인가 보다. 녹차는 조금 거들 뿐인가.
봉투를 열자 페퍼민트의 향이 슥 코를 스쳐간다. 딱히 가향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향을 맡아보려 코를 바싹 가져가니 차향 보다는 시트러스의 향이 살짝 있다. 건엽을 덜어보니 페퍼민트가 잔뜩 들어있고 사이사이로 녹차인지 페퍼민트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잎들이 섞여있다. 녹차가 특이하다 싶어 찾아보니 스리랑카 녹차라고 한다. 그러니까 발효하지 않은 실론티란 거지. 이 조차도 너무 아이스티 지향으로 느껴진다. 맛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미지가 그렇잖아 실론티. 레몬필 말린 것과 오렌지필 같이 생긴 것도 있는데 이건 또 다이다이 과피라고 한다. 오렌지 비슷한 귤 같은 일본 과일이라고 하는데 신기한 게 들어갔구만. 거기에 몇 송이 안되는 것 같은 자스민 꽃도 들어가 있다. 알라딘에 자스민이라니 이거 참 재밌네. 지니는 없나. 전체적으로 레몬필과 녹차를 토핑 한 페퍼민트티라는 인상이다.
6g의 찻잎을 150ml, 95도쯤의 물로 2.5분 우려 준다. 가향녹차인 줄 알았지만, 녹차가 들어갔지만, 무시하고 그냥 푹푹 삶아버린다. 그대로 얼음컵에 투하. 시음기가 밀려서 그렇지 사실 10월 초에 찍은 사진이라 아이스티를 마시기 그리 춥진 않았는데 지금 보니 뿌옇게 크림다운 현상이 있네. 하지만 나는 크림다운 따위 개의치 않는 급진, 아니 급랭주의자. 특히나 터키시한 민트차라면 냉침보단 급랭이 옳게 된 고증 아니겠는가. 신경 써서 냉각하면 크림다운 현상은 충분히 피할 수 있으니 여러분들은 검색 잘하셔서 수색에 피해 없으시길 바랄게요. 아무튼 맛이.. 향이.. 그러니까.. 페퍼민트인 건 알겠는데 다른 뭐가 들어가긴 한 맛인가. 그렇게 삶았는데 녹차 어디 갔니? 시트러스는 어디에? 음.. 후레쉬민트야, 스피아민트 어디 갔니. 자스민이고 시트러스고 녹차고 뭐고 없이 그냥 페퍼민트.
온도도 바꿔가면서 이래저래 해봤는데 최종적으로는 그냥 페퍼민트차구나, 하고 포기해 버렸다. 역시 여러 선생님들께서 아니라고 할 땐 다 이유가 있었다. 살짝 마음이 좋지가 않은 게 어떻게 마셔도 나쁘지 않은 페퍼민트이긴 했고 찻잎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어디 추천하진 못하겠는 느낌. 맛있다가 아니라 나쁘진 않다에서 멈춰버리는 게 가장 문제랄까. 앞으로도 나아지긴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라 그저 아쉬운 알라딘이었다. 지니 없는 알라딘,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