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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도 교향곡 말고 협주곡 느낌 날 수 있어

루피시아 6525. 혼야마 신차 토우벳토우 2025

by 미듐레어

루피시아의 일본차 신차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의 온라인 그랑마르쉐 시기에 일본차 할인행사에서 주문했다. 사실 2000엔가량의 한도가 남아서 하나쯤 더 넣는다면 얼마 전 소개한 코쥬를 넣을지 토우벳토우를 넣을지 고민을 엄청 했었다. 똑같은 혼야마라서 가마이리차를 할지 센차를 할지의 고민이었는데 최근 어찌저찌 가마이리차를 연달아 마시고 있었던 상태라 센차로 결정. 시즈오카 센차를 좋아하기도 했고 정보를 봤을 때 아사무시차라고도 하고 단위가 그래도 25g보단 20g짜리를 하나 더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결정했다. 평소 가격은 20g 봉입에 2500엔으로 상미기한은 제조 1년. 할인기간이라 두 봉에 4500엔으로 구매했다.

800미터면 북한산 정도 되는거 아녀?

혼야마까지만 표기가 되어있지만 여기 토우벳토우 또한 다원명으로 타마가와 지역에 위치한 다원이라고 한다.

효코- 햐쿤 미토 노 차엔니테 야마기리가 하구쿤다 고쿠죠 센차. 와카와카시이 세이메이료쿠토 코쿠, 키레노 아루 코키가 초와.
표고 800m의 다원에서 산 안개의 품 속에 자라난 극상 센차. 젊고 생명력 있는 깊은 맛, 맑고 깔끔한 향기가 조화.

800미터라고 하면 딱히 고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 시즈오카에서는 저 정도 높이면 차 재배 한계선이라고 한다. 츠키지 가츠미라는 전설의 명인이 80년대에 개간한 차밭인 토우벳토우가 위치한 곳은 기후조건이야 한계선 근처인 만큼 가장 일교차도 크고 겨울도 혹독한 환경이라고 한다. 5월 중순 1아 2 엽의 첫차만을 일본에선 드물게 손으로 직접 따서 만든다고 하며 6초 이내의 짧은 증제로 살청 한다고 한다. 설명만 들어봐도 프리미엄급의 시즈오카 센차겠구나 싶다.

살짝 부서진 느낌도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면 잘 알고 있는 센차 특유의 밝고 고소한 향이 가득하다. 해조류향의 직접적인 느낌보단 기름 살짝 발라 구워낸 김냄새를 멀리서 맡는듯한, 하지만 굉장히 밝고 신선한 톤의 시원한 향이다. 이젠 이런 종류의 향을 맡으면 차품이 괜찮겠구나 싶은 감각도 슬슬 생기기 시작하는 듯. 건엽을 덜어내면 이번 시즌 구매한 일본 신차 중에 가장 길고 빤들한 찻잎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아사무시로 살짝만 쪄낸 차이다 보니 찻잎의 보존 상태가 단단하다. 품종은 야부키타 품종에서 유래한 오오무네라는 품종. 시즈오카에서 선발한 야부키타의 일종이라고 한다. 사진이 유독 짙고 어두운 색으로 나왔는데 저거보단 좀 밝은 톤이긴 해도 신록의 느낌보단 짙은 편인 게 사실.

건과일 다식

따뜻하게 데워둔 다구에 3g 이상의 찻잎을 넣고 80도의 물 100ml를 부어 45초간 우려낸다. 꽤나 무거워 보이는 향이 자리를 잡는데 아닌 게 아니라 감칠맛 같은 우마미도 적지 않고 꽤나 물질감이 있는 느낌이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75도 같은 낮은 온도에서 우리면 단맛과 부드러움 위주로 마실 수 있고 온도를 고온에서 올리면 감칠맛과 힘 있는 바디감 같은 게 많이 나온다는 뻔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온도를 내려도 꽤나 감칠맛이나 바디감이 강한 편에 속하는 차라고 생각이 든다. 시즈오카 특유의 상쾌하고 은은한 단맛은 70도까지는 내려줘야 하는데 이렇게 마시는 토우벳토우는 시즈오카 봄차에서 느껴지는 산들산들한 바람을 연상시킨다. 뒤로 가면 푸릇하게 느껴지는 풋풋하게 혀 위에 남는 맛도 일품. 정말 맛있는 차이긴 한데 시즈오카 녹차 5월쯤 마트에서 사 와도 이것에 아주 살짝 못 미치는 정도로 꽤나 품질이 좋은 차들이 많아서 경쟁력은 글쎄요가 되어버려 아쉽긴 하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첨언한다면 차도 차품이 올라갈수록 가격이 선형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지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당연히 가격차이가 좋은 차들끼리 더 쭉쭉 벌어지기 마련이고 그만큼 일본마트에서도 좋은 차를 좋은 가격에 많이 팔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아사무사라 나물 느낌이 살아있다

토우벳토우를 한마디로 하자면 시즈오카 특상 정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마셔봤던 시즈오카 녹차의 지역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바디감과 감칠맛을 여전히 무겁지 않게 순두부처럼 그려내는 맛이 일품이었다. 시즈오카는 뭐랄까 그냥 일본녹차라고 부르고 싶고 센차라는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뒷쪽에 이야기한 바디감, 감칠맛 같은 건 아무래도 좀 약하다는 인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교향곡이라 충분히 오케스트레이션도 있고 한데 뭔가 협주곡 같은 임팩트가 없는 그런 느낌. 그런 편견을 한방에 깨준 좋은 차였다고 생각한다. 풍성한 느낌의 시즈오카를 마시고 싶을 때면 한 번씩 생각날 것 같은 혼야마 토우벳토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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