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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Jan 28. 2024

장바구니에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주문에 포함하고 싶다

루피시아 5250. 금귤

어렸을 때 시장을 가면 빨간 바구니에 노란 구슬 같은 과일을 팔던 게 있었다. 이름도 특이한 낑깡이란 과일. 표준어로는 금귤이겠지만 여전히 낑깡이라고 해야 그때 그 느낌이 사는 기분이다. 겨울 루피시아 장바구니를 만드는데 금귤이 있어서 얼른 넣어봤다. 낑깡홍차라니… 귤같이 생겼는데 껍질째 먹는 귤이라는 충격적인 낑깡의 첫 경험이 떠오르면서 그걸 홍차에 블랜딩 한다고 생각하니 와 이건 못 참지. 가보자고. 40g 한정 일러 캔입이 1020엔이었지만 일러가 좀 못생긴 거 같아서 그건 스킵. 50g 봉입 800엔. 계절 한정으로 10월~1월에만 판매하는데 체감상 10월 말~1월 중순 한정 판매다. 상미기한은 시트러스 과일 생물이 들어가서 그런지 6개월로 짧은 편. 그런데 한국의 금귤과는 뭔가 제철이 좀 다른 느낌이다. 늦겨울이나 초봄에 나오지 않나?

일러스트 캔을 안 샀더니 또 아쉬운 마음도 들고 그렇다

제목에 금귤이라고 써있고 밑에 국제 표준 발음인 굼쾃이라고 적혀있다. 낑깡 아닙니까?

혼노리 아마쿠, 호로니가이 킨칸 노 카오리 오 츠케타 코차니, 곸산 노 킨칸 카히 오 부랜도.
조금은 달고 살짝 씁쓸한 금귤 향이 입혀진 홍차에 국산 금귤 과피를 블렌드.

껍질째 먹는, 과육보단 과피가 중심이 되는 과일이다 보니 특유의 그 껍질에서 오는 씁쓸한 맛이 포인트가 되는 모양이다. 보통 오렌지필이 들어가거나 레몬필이 들어가면 특유의 씁쓸한 맛을 내지 않으려고 주의하게 되는데 이렇게 대놓고 껍질맛 납니다, 적어놓고 시작한다니. 오히려 기대가 되는 부분. 이 맛이 궁금하다면 당장 뜨거운 홍차에 레몬 슬라이스를 담가본다던지 아니면 처음 차를 우릴 때 레몬껍질을 넣고 같이 우려 보면 그 씁쓸한 여운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또, 한번 적응되면 신선한 시트러스가 들어갔구나 하고 나름 즐기게 되는 맛이다. 평범한 루피시아의 홍차 레시피인데 그러고 보니 봉투 크기가 굉장히 낭랑하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

간결한 구성

가위로 봉지를 슥슥 개봉하자마자 심상치 않은 블랜딩이구나 싶었다. 흔한 루피시아의 풍선껌 휘발향이 아닌 오렌지 껍질이나 자몽이나 한라봉 같은 두꺼운 귤과의 껍질을 벗기고 났을 때의 그 찐득한 시트러스 껍질 기름에서 나는 휘발향이 난다. 찌릿할 정도로 시큼함이 순식간에 비강을 통과해 눈 뒷쪽까지 닿는 기분이다. 적어놓으니 좀 징그러운데 오히려 반가운 느낌의 향기로움이다. 생각해 보면 그 어떤 오렌지 블랜딩보다도 더 오렌지 같은 느낌이다. 건엽을 덜어내면 평범한 브로큰에 금귤 과피가 으깨서 넣은 것처럼 큼직하게 들어있다. 상당량의 과육도 포함되어 있어서 더 그렇게 보인다. 이 정도면 상미기한 짧은 게 아주 납득이 된다. 과즙에 찻잎이 상할 것만 같아. 아니나 다를까 원재료 목록에 산화 방지제가 첨가되어 있다. 약간의 향료와 구연산이 도우미로 첨가되었군. 과육이 많이 붙어있다 보니 찻잎도 과육에 덕지덕지 많이 붙어있기도 하다. 차의 원산지는 인도와 베트남인데 다시 봐도 평범한 아쌈 브로큰으로 보인다. 어째 줄기가 많아 보이는데 홍차엽의 퀄리티가 옛날 같지 않은 건 볼 때마다 좀 아쉽네. 근데 이 부분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비슷한 추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잎, 오소독스 한 잎들은 다 어디 가는 거야.

잔이 깊어 수색이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려내었다. 향에서부터 이미 느껴지는 산도. 입에 침이 고인다. 수색이 살짝 연한 듯 탁한듯한 게 위에서 말한 홍차에 레몬 직접 넣어준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일까. 오렌지필의 향이 진하게 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셔본다. 앗, 이것은, 아쌈이다. 반드시 아쌈이어야 한다. 게다가 오렌지향이 진하게 나는 건 마치 과일 인퓨전을 홍차에 넣어줬을 때의 그 향이다. 옛날 옛적 선물 받은 오렌지필 인퓨전이 있었는데 아마 위타드였는지 포트넘이었는지 그랬을 거다. 그것만 우려서 마시자니 뭔가 심심하고 재미가 없어서 가지고 있던 아쌈에 섞어서 마셨더니 딱 이런 맛이어서 재밌게 잘 마셨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인퓨전을 제대로 우리지 못했던 거 같고 상미기한이 조금 지나거나 해서 사장님이 주셨던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게 되네?' 싶으면서 한편으론 뿌듯했던 기억이다. 그때 느낀 그 맛과 향이니까 이건 반드시 아쌈이어야 하는 거예요? 진정하고 다시 한번 맛을 본다. 루피시아의 홍차는 보통은 순딩순딩하니까 수렴성이 진한 경우도 별로 없고 더군다나 홍차에서 열감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하겠으나 아마도 금귤의 과피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겠지만 조금은 열감이 느껴지는 금귤이다. 잔 밖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던 진한 오렌지향이 알싸하게 느껴질 정도이고 낑깡을 씹어먹을 때의 그 씁쓸함이 약간의 수렴성과 함께 느껴진다. 낑깡의 시큼한 맛은 거의 없고 단맛도 없는 편이어서 더더욱 오렌지필처럼 느껴진다. 너무 기름지지 않은 베이커리류와 잘 어울릴 것 같다. 초코파이가 아니라 초코 쿠키 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백숙에 들어가는 통마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엽저에서 확인한 낑깡의 조각이 썰어놓은 모양이 아니어서 뭔가 좀 짜릿하다. 씨를 빼기 위해 적당히 압착하고 통으로 넣은 것만 같은 비주얼. 모름지기 과일 블랜딩은 생물 그대로를 한번 으깨서 듬뿍 넣어줘야 제맛이니까. 두 달쯤 전에 마셨던 유자와 비교해 보면 녹차 홍차의 대조도 있겠지만 정말 잘게 조사 놓은 느낌이었던 유자에 비해 금귤은 어떤 대척점에 있는 느낌이다. 상미기간도 유자와 비슷하고 어쩌면 구입하고 좀 서둘러서 유자와 비슷한 시기에 마셨어야 하는 금귤인데 타이밍이 어째 이렇게나 뒤로 밀려버렸다. 늦었지만 비교해 보자면 유자는 장바구니 자리가 좁으면 바로 탈락시킬 것 같다고 했는데 짝꿍인 금귤은 꽤나 우선순위로 장바구니에 넣을 것 같다. 이제 슬슬 겨울 행낭을 마무리해 가는 시점에서 또 하나의 마음에 드는 블랜딩을 발견한 것 같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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