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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May 14. 2024

친구는 오랜 친구 죽마고우 국민가향 사쿠람보

루피시아 5223. 사쿠람보

사쿠람보는 르피시에 시절 사쿠란보였을 때부터 루피시아를 대표하는 가향차로 나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홍차인들에게는 여러 추억이 많이 쌓인 차일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모든 계절에 사쿠람보와 관련된 추억들이 있을 정도이니 내 홍차인생의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차가 바로 사쿠람보 아닐까 싶다. 이제야 새삼 시음기를 자세히 쓰는 것도 웃기지만 추억 제외하고 지금 시점의 사쿠람보에 대해 기록해 놓는 것도 의미가 있겠구나 싶다. 수많은 겨울시즌 가향차의 끝에서 사쿠람보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여차저차 이제서야 사쿠람보. 50g 봉입으로 730엔. 상미기한은 2년일 텐데 생산을 한철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종종 1년 남짓인 상품이 있기도 하다. 그럴 경우엔 아마도 할인이 붙었을 테지만.

사쿠람보

너무도 익숙한 라벨과 패키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사쿠람보다.

아마주빠이 카오리 가 코코로 오 쿠수구루 미주미주시이 니혼 노 사쿠람보 오 이메지 시타 코차 데스.
새콤달콤한 향기가 마음을 간지럽히는, 신선한 일본의 버찌를 이미지한 홍차임다.

사실 다른 어떤 향 보다도 사쿠람보 자체의 향을 먼저 맡고 기억해서 사쿠람보는 사쿠람보일 뿐이지만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새콤달콤향…이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자사의 제품설명이니 그런가 하고 넘어가 본다.

체리체리하기엔 패퍼 다 부서졌다

봉지를 개봉하면 가스를 들이키는 듯한 강한 휘발향과 함께 솔잎향 같은 향이 강하게 날아든다. 역시 사쿠람보 하면 이 향이지. 사쿠람보를 단순히 체리라고 번역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버찌향이 이렇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이 상쾌한 향이 사쿠람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엽을 덜어내면 이제서야 보이는 핑크페퍼와 녹색의 로즈마리. 버찌의 열매와 거기 달린 꼭지를 표현한 토핑일텐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각각의 향이 정확하게 블랜딩 되어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정보를 접하기 어렵던 그 옛날엔 실제 버찌열매와 솔잎인 줄만 알았다. 로즈마리를 안 먹던 때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아마도 부족한 상상력 때문이겠지. 아까부터 이야기한 솔잎향의 정체도 바로 이 로즈마리향인데 로즈마리인걸 알고 맡으면 영락없는 로즈마리가 맞다. 다만 가향의 그 휘발향과 섞여서 좀 매콤해지니 헷갈리기도 쉽다. 베이스 홍차는 적당히 인도와 베트남을 섞은 블랜딩.

다식 매칭을 좀 아무렇게나 하는 편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려낸다. 어렸을 때 입맛으론 분명 333이었는데 차가 변한 걸까 내 입이 변한 걸까. 여러 차례 느끼지만 내 입이 늙긴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완성. 사실상 체리향이나 어떤 가향보다도 압도적인 로즈마리향이 이 차를 컨트롤하는데 그렇다고 가향이 없거나 약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분명 페퍼나 로즈마리만으론 나올 수 없는 가향이 가득 풍겨 나온다. 하지만 사쿠람보의 진짜 매력은 입안에 들어갔을 때 이 상쾌함이지. 마치 민트를 쥐어짠 것처럼 엽록소가 가득 느껴지는 맛. 그렇다고 톡쏘거나 쓰거나 하지도 않고 정확히 중도적인 매력을 선 굵게 긋는다. 아직도 마실 때마다 처음 사쿠람보를 만났을 때의 충격이 떠오르는 걸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임엔 확실하다. 어찌 보면 다른 매실가향과도 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거기서 인위적인 달달함을 모두 내려놓은 느낌. 홍차, 그것도 가향차를 마시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 건 사쿠람보가 정말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아이스티의 사진이 없는데 사쿠람보는 아이스티 추천 라벨이 붙어있을 정도로 아이스티로 유명하다. 진즉에 다 마시고 쓰는 시음기라 다시 사진을 찍지 못하는 점 양해바랍니다인데 제발 다들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 아이스티를 한번 마셔보길 바란다. 핫도 너무 매력적이고 아이스티는 급랭, 냉침, 탄산냉침 기타 무슨 방법이든 실패하기가 어려운 차 중에 하나이다. 어차피 워낙 유명해서 찾아보면 다 나올 테니 알아서들 참고하셔라. 사진은 없지만 반은 핫으로 반은 급랭으로 마셨고 냉침도 한번 마셨다.

클래식

오랜만에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변하지 않고 반가운 마음이 들게 하는 오랜 친구 사쿠람보. 디카페인이나 녹차버전이 있다는 걸 알고 신세계구나 싶은 충격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것조차도 십수 년이니 다 마신 봉지를 정리하는 마음이 어딘가 좀 애틋하다. 다음번 사쿠람보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또다시 반갑게 마주칠 수 있기를. 예전엔 카페에서도 종종 보이곤 했는데 요즘은 마리아쥬나 TWG에 밀려서 영 만나기가 어렵단 말이지. 그러므로, 아마도 다음 직접구매 때가 되겠지만 그때까지 안녕. 사쿠람보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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