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했던 학교 도서관은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타이프를 치며 수업이 있을땐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다. 우리 집은 당시 가세가 기울어 대학교에 입학한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냥 쳐본 시험에 덜컥 합격이 된 바람에 가게 된 학교였다. 그때 우리 집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집안 곳곳엔 빨간딱지가 붙어져 숨 쉬는 것도 힘들었다. 빚쟁이들은 틈만 되면 들이닥쳤고,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게시판에 보게 된 도서관 근로장학생은 나를 학교에 온전하게 숨겨준 삶의 도피처였다. 도서관에 출근하는 날 나는 절망 끝에서도 생은 참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도서관은 음지에 위치한 탓에 어두웠고, 겨울엔 항상 추웠다. 특히 우기의 계절이 오면 묵은 고서에서 문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곰팡이 냄새는 젖은 도서관을 유령처럼 천천히 돌아다녔다. 나는 학교에 계속 다닐 수만 있다면 어떠한 것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하루종일 손목이 아프도록 타이프를 쳤다. 그 당시 도서업무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정리하던 시기였다. 책에게 집을 만들어주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신간들은 그렇게 내 손을 통해 주민등록번호처럼 번호도 정하고 도서관의 식구가 되었다. 매섭게 한파가 몰아칠 때면 서고실엔 하얀 입김이 서렸다. 그럴 때면 전기 주전자로 옥수수차를 끓였다. 옥수수 차에서 올라오는 온기는 저녁 무렵의 신호등 불빛처럼 추운 마음을 다스려주었다. 나는 따뜻한 주전자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추위를 견뎠다. 뻣뻣한 손가락이 펴지면 다시 타이프를 치면서 책을 정리했다. 처음 월급을 받던 날을 기억한다. 통장 안에는 한 학기의 등록금이 들어있었다. 그날 나는 어두운 서고실에서 통장을 품에 안고 흐느껴 울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도서관이란 공간은 내게 책 보는 것 이상의 공간이 되었다. 집을 구할 때도 항상 도서관 근처이면 좋았다. 도서관은 내게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치유의 공간이기도 했다. 힘들 때 도서관을 찾으면 이상하게 혼란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평온해졌다. 지금도 집 뒤엔 도서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나만의 공간이 있다. 비 오는 날 그곳에 앉아있으면 통유리로 초록의 풍경이 넘실거린다.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인생은 도서관과 같이 늙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