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야기를 각색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길을 가로질러 청도 운문댐으로 하염없이 달려간다. 잃어버린 내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추억이 불쑥 끼어들어 가슴이 요동치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가는 곳은 망양정이다. 망양정은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작은 정자다. 눈앞엔 망향비가 보이고 비석에는 수몰민의 망향을 달래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앞에는 시퍼런 호수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고요하게 흐른다. 이곳 망양정에 서면 지나간 시간이 꿈인 듯 아련해진다. 지금 내 고향은 차가운 물속에 잠겨있다. 내 유년의 기억이 몽땅 이곳에 잠수되어 나는 봄이 오면 까닭 없이 슬퍼져서 이 길을 따라 불현듯 달려가고 싶어 진다. 향수병이 도지는 것이다. 운문댐 건설이 발표되던 날 엄마의 전화 목소리는 울음이 잔뜩 배어 있었다.
“야야, 우리 동네가 물에 잠긴단다. 이 무슨 일이고?”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물에 잠기면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되긴, 우리 동네가 통째로 없어지는 거지. 동네사람들이 갈 데가 없어 난리여. 보상은 둘째치고 조상이 남긴 이 전답 놔두고 어디서 사는지 막막하다야.”
그때 운문댐 건설로 우리 고향을 비롯 7개의 마을이 희생양이 되었다. 우리 동네 대천리는 운문면에서 가장 중심지로 큰 동네였다. 망양정에는 수몰되기 전의 면사무소와 보건지소, 그리고 운문초등학교의 낡은 사진이 걸려있다. 나는 그 사진을 휴대폰에 담아서 어릴 적 무수히 드나들었던 시간을 떠올려보곤 했다. 한동안 우리 집에서 고향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서로 피했다. 그러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기억이 희미해진 탓도 있지만 그때 고향을 떠나오면서 가지고 온 초등학교 일기장. 그 일기장 속에서는 내 고향집이 살아서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사진보다는 일기 속에 담긴 스토리텔링에 더 강력한 힘이 들어있다. 이야기 속에는 공간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어린 내가 있었다.
나는 망향정에서 운문댐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름을 목놓아 불러본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 엄마는 눈가가 짓물러져 꾹꾹 눌렀던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일기장에서나 그 흔적을 느낄 뿐 내 어린 시절의 시간은 고요히 흘러가는 물결에 묻혀버렸다. 나는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빛이 바래 다 낡아버린 일기장을 한 번씩 꺼내본다. 여름이면 초록으로 병풍이 둘러친 것처럼 포근히 감싸던 동네. 평범하지만 사계절마다 표정이 다르던 내 고향 들녘의 풍경이 떠오르면 미친 듯이 이곳 망양정을 달려온다. 가끔씩 꿈을 꾼다. 할아버지의 자전거 체인 감기는 소리가 차르륵거리며 논길을 달리고 있다. 또 물속으로 걸어가는 아버지를 내가 끌어당기며 밤새도록 베개가 축축이 젖도록 운 적도 있다. 엄마를 모시고 나오면서 고향집에서는 크게 챙겨 올 것이 없었다. 가슴속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묻고, 집을 묻고, 고향을 묻고서 큰 캐리어 하나 갖고 나오는데 엄마는 마당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셨다.
“나, 이제 갈라요. 당신이 나 찾아오겠는가? 이곳은 이제 물바다가 될 건데 참말로 말을 못 하겠소.”
그런 엄마는 지금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는 차라리 추억이 없어져서 더 좋을지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다. 엄마가 눈으로 말한다. 이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아픔도 그리움도 이제 다 희미해져 가는 지금 나는 요즘도 일기를 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나는 미래를 생각하며 기록을 남긴다. 현재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잊혀간다는 것만큼 슬픈 것이 없다. 지나온 애틋한 시간을 돌이키고 싶지만 인간의 두뇌는 나이가 들수록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그래서 기억의 토대는 기록이다란 말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는 마르케스가 한 말을 좋아한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대로이며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
오늘은 산책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볼 생각이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에서 누군가가 나란히 같이 걸어간다. 11살의 키 작은 내가 따라오면서 불쑥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