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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나라의 정원사 Mar 11. 2024

숲 도서관

우리 동네에는 도서관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책을 보러 가는 도서관이고, 또 하나는 숲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이다. 숲 도서관이라니,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는 책으로 지식을 쌓아가기도 하지만 숲으로도 마음공부를 채워 나갈 수가 있다.

 숲 도서관은 연중무휴 24시간 열려있다. 책은 일반 도서관처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만큼은 있다. 자연을 담은 책은 오감을 통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한다. 일단 역사코너에 가면 나무 책도 있고, 건강코너에 가면 시냇물 책도 있고, 문학코너엔 들풀이나 꽃도 있다. 나는 매일 이 도서관에 출근한다. 이래 봬도 자격증이 있는 말단 사서다. 일 년 전 이 도서관에 취직하고 싶어서 자연지도사를 땄다. 내가 하는 일은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이다. 숲 도서관에서는 책은 빌려갈 수가 없다. 열람만 가능하다. 봄이 돌아오면 숲 도서관에도 신간이 많이 들어온다. 사계절 중 가장 바쁜 시기다. 서고마다 책들이 가득 차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책은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진다. 봄꽃들은 숲 도서관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에게 인기 폭발이다. 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한다. 제비꽃, 할미꽃, 별꽃, 씀바귀…… 모양도 색깔도 가지가지다. 이 눈부신 책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선다. 도서관 입구에 있는 벚꽃나무에서 잎이 하르르 떨어지면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꽃이 핀다.


  숲 도서관에 오는 회원들은 참 다양하다. 동이 틀 때쯤 오는 회원들은 이 동네에 사는 부지런한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매일 도서관 벤치에 앉아 책을 본다. 싸리나무를 보며 옛날 그 나무로 빗자루를 만들던 시절을 생각하고, 때죽나무를 보며 열매를 갈아 물가에 풀어놓으면 물고기들이 기절하던 이야기를 하신다. 국수나무를 분질러 보면 국수처럼 하얀 심이 나오는 것을 기억하고, 청미래덩굴 잎사귀로 싸 먹던 망개떡을 그리워하신다. 어르신들은 모두 숲 도서관의 선배님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한다. 노인이 가진 지혜와 경험을 높게 평가하는 말이다. 숲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숲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르신들이 먼저 알아보신다. 동네 아줌마들이 이곳을 찾았다가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또 한 가지 배워서 간다. 아침이 되어서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찾아왔다. 나무 책을 찾는 아이들에게 나는 ‘나무 맥박 듣기’란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청진기를 나누어 주었다. 나무는 우리들과 똑같이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하며, 숨을 쉴 뿐만 아니라 피도 돌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생명의 흐름은 “쉬이 쉬이” 하는 근사한 맥박소리로 들린다. 아이들은 신기해서 앞 다투어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청진기를 사용할 때는 낙엽수보다는 침엽수가 잘 들리며, 소리를 들을 때는 움직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청진기를 나무에다 대고선 귀를 쫑긋 세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들이 크게 소리쳤다.

 “선생님! 이 나무에서 심장 소리가 들려요, 살아 있는 거 맞아요,”


 나는 큰 소리로 떠들지 말라고 아이들을 주의시킨다. 숲 도서관에 오면 늘 그렇듯이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되고, 뛰어다니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개미를 밟고 있지 않는지, 혹은 일 년생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는지 땅을 자주 보라고 한다. 우리 도서관에는 도토리를 슬쩍하는 친구들은 없다. 이 작은 도토리들이 다람쥐 먹이인 것을 아는 이상 집에 가지고 가는 일은 결코 없다. 이렇게 땅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배려심이 많은 아이로 자란다. 나는 아이들이 마음 설레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숲 도서관은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다. 나뭇가지가 하늘거리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이런 소리도 들린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에서 종소리가 댕그랑거리며 울리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이 누워서 하늘을 보면 낙엽을 덮어주기도 한다. 낙엽 위에 벌레가 기어 다녀도 움직이지 말고 참아 보라고 응원한다. 이런 특별한 경험들이 아이들에겐 두고두고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된다. 숲 도서관에 다니며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생명을 존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아이가 된다. 나는 지식으로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가르치기보다는 서로 나누면서 느끼라고 한다. 코로 호흡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를 열어 소리를 들어보는 이곳은 매일 와도 재미있는 것이 넘쳐난다. 숲 도서관은 계절을 통해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를 선물하는 곳이기도 하다. 풀은 풀대로 꽃은 꽃대로 딱 알맞은 만큼 자신을 알리고 때가 되면 사라진다. 

 나는 숲 도서관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이곳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이곳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지만 특히 마음이 아파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오라고 말하고 싶다. 침묵하며 조용히 명상에 들어가면 진실된 자신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도서관에 해 그림자가 내려앉더니 어둠이 찾아왔다. 숲 도서관을 찾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다. 숲 도서관의 업무가 끝나는 시간이다. 밤에 숲 도서관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다 가고 나면 경비들이 출근하기 때문이다. 경비아저씨는 어떨 때는 고라니가 될 때도 있고, 다람쥐가 될 때도 있다. 아마도 오늘은 새로 출근하는 경비일 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 내가 올 때까지 우리 숲 도서관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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