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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나라의 정원사 Mar 16. 2024

시에서 건져 올리는 희망

시의 힘을 읽고(서경식)

 

 일본어를 배운지 2년이 넘어간다. 자원봉사 오시는 선생님의 연세는 여든 여덟이다. 스무 살까지 일본 동경에서 살다가 해방되어 한국에서 결혼을 하셨다. 선생님은 수업 전에 항상 칠판에 자신이 직접 쓴 한시를 적어서 우리들에게 단어를 외우게 한다. 시를 보면 일본 문화에 대해서 일 때도 있고, 날씨나 계절에 대해서 적을 때도 있다. 선생님의 시 세계는 생활전반에 이루는 서정성을 넘어 따뜻함을 품고 있다. 한자와 일본어의 혼용이 처음엔 어렵고 해석하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자꾸 하다 보니 뜻글자로 된 한시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부모님은 유학생이었다. 선생님은 동경에서 태어났고, 집안에서 한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시대를 관통하면서 선생님의 가족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닌 일본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의 힘>에서 말한 ‘디아스포라’인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특정 인종의 집단이 자의 혹은 타의적으로 기존에서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해방이 되자 선생님은 가족들과 한국으로 밀항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동네 어르신의 소개로 한국남자랑 결혼했는데 말 하나 통하지 않는 암담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선생님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누구하나 마음을 털어내지 못할 땐 시를 썼다. 시를 통해 위로받았고 답답한 일상을 묵묵히 견뎠다. 독서회에서 이 책을 토론한다고 했을 때 유난히 눈에 띈 것도 선생님의 사연 때문이었다. 부제는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 하는가’이다. <시의 힘>은 문학평론이기에 앞서 자전적인 요소가 짙은 에세이다. 목록에는 이산인으로서의 삶도 있고, 일제 강점기 때 투항한 시인들의 이야기, 자신의 문학적 영감을 준 루쉰과 나카노 시게하루 이야기, 쉰 살에 한글을 접한 어머니와 정치범으로 내몰린 형들의 사연, 그리고 문학에 대한 물음들이 실려 있다. <시의 힘>은 제목과는 다르게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눈으로 필사하듯 읽어 내려갔다. 그는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대답이 뚜렷했고, 사람들 마음속에 내재해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욕망이나 감정을 끄집어내는 도구로 문학을 꼽았다. 시의 힘은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먼저 우리의 일상성 안에 시가 가지는 특별함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시는 개인에게 어떠한 삶의 방향을 정하고 성장하는가. 그것에 대한 물음이 떠올랐다. 그의 십대에 썼던 시들을 보니 자신의 문학 세계 안에는 항상 분단된 조국, 지배하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오롯이 녹아있었다. 그는 대학시절까지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인이 지금까지 전범으로서 사과하지 않는 그릇된 의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가 고민했던 이산인으로서의 삶은 어쩌면 그가 일본에 살면서 늘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뿌리에 대한 의식이었다. 서경식은 일본에서 이산인으로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대치하고 있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글쓰기란 양자 사이의 경계에 서서 주위 사람들에게 ‘타자’ 인식을 촉구하는 동기라고 말한다. 주체성을 빼앗긴 나라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건 그나마 시를 통해서였다. 그는 성장하면서 유명했던 시를 읽으면서 사색했다. 그 시는 자신의 내면에 깊이 들어앉아 자신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동기가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겪고 있는 방황을 조금씩 구체화 시키고 실천했다.   

  

 일본어 선생님은 지금 고령의 연세임에도 한자를 비롯한 표현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확하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줄곧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뼈 속 깊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상 절대 일본인에게는 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교내백일장에서 나름대로 구체어를 정하여 일본을 향해 날을 세웠다. 복수의 한 방법이었다. 선생님이 말한 구체어는 식민지 시절 조선인 시인들이 사용했던 그것과 닿아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를 보면 고향을 빼앗기는 사무치는 상실감이 또렷이 나타난다. 서정시로 유명한 윤동주 역시 창씨개명을 강요당했던 그해 부끄러운 이름이 나오는데 현실을 비관하며 쓴 시다. 영화 ‘동주’에서 냉동 마루타로 실험하는 중에도 그를 바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시’였다. 팅팅 불은 몸에 끊임없이 실험용 주사를 맞으면서도 그는 지옥 같은 하루를 견뎠다. ‘서시’를 들으며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나왔다. 이후의 김지하나 양성우의 시는 자신의 생계를 저당 잡힐 정도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조선인들의 시는 날개를 달지 못했고, 어휘 하나에도 감시를 받았다. 그 시대의 시는 곧 자신만의 항거방법이었다. 이들은 감옥에서 처절하게 죽어갔고, 혹독한 시련 속에서 살았다. 작가 서경식 또한 두형을 조국 감옥에서 구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시’에게 의지했다. 이들에게 ‘시’는 강력하고 견고한 믿음이었다. 


 시는 내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생각해본다. 대학입시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때 시는 내게 숨통을 열어주는 청량한 공기였다. 불운한 시대에 항거했던 시인들은 조국을 위해 시를 썼고, 우리는 답답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시를 외웠다. 짧은 시는 매일 먹는 밥 세끼보다 더 절실한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때 나는 시 한 줄이 밥보다 더 위대하다는 생각을 처음 가졌다. 정신적 토양이 넓어지고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내 앞에 맞닥뜨린 시는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는 설득력 있는 은유의 짧고 강한 메시지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인생 안에는 항상 문학이 따라다녔고, 문장들이 엮어내는 여러 가지 의미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색의 힘이 거기서 시작되었다. 문학 감수성이 토대가 된 성장기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시의 힘>을 다 읽고 나니 한 편의 잘된 드라마처럼 잔상이 남는다.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 건 그가 추구했던 정의로운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홀로코스트, 동일본 대지진, 원전 피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면서 피해자와 비피해자가 재난을 건너고 가혹한 현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책을 덮고 생각한다. 시 한편이 비록 눈앞에 어떤 성과나 결과물을 보이지 않더라도 시가 가진 내재적인 울림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연하게 보여준다. 서경식이 말했던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배의 역사 속에서 시는 바로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는 시인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오늘 일본어 수업을 받으면서 문득 그 대목이 생각났다. 시를 좋아하는 일본어 선생님은 칠판에 또 무언가를 썼다. 풀이하면 이렇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의 가슴 안에 있는 시를 읽는 것’

 이 멋진 말을 기억해내는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이제 기억력도 가물거릴법한데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손끝이 단단해 보인다. 저 명료한 의식이 어디서 숨어있을까 궁금하다.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시어를 보면서 나 또한 선생님처럼 시를 평생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이곳에 오고 싶다는 재능기부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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