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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나라의 정원사 Apr 16. 2024

감독의 눈물

눈꺼풀(영화)- 오멸감독

 광풍이 휘몰아치는 서슬 퍼런 파도가 바다를 헤집어 놓고 있다. 울음을 토하듯 웅얼거리는 진혼곡이 파도 위를 너울거리며 눈꺼풀은 시작된다. 달마대사가 면벽수행을 하면서 잠을 못 이겨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노인의 내레이션엔 뭔가 비장함이 들어있다.

 영화는 철저히 대사를 절제하고 오직 소리만으로 집중한다. 대나무가 서걱대는 소리는 칼이 되어 가슴깊이 꽂힌다. 잡풀이 낫에 쓱쓱 베어지는가 하면 신발을 바닥에 질질 끄는 소리, 발악하는 전화벨 소리까지 이 영화는 온통 귀를 아프게 때리는 소리뿐이다. 영화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절제된 대사와 무채색 화면 위로 비장한 물음하나를 숨기고 언제 터트릴지 모르고 날이 바짝 서 있다. 노인은 제주도의 미륵도라는 섬에서 떡을 지어 수장된 영혼들을 위로하는 일을 한다. 고무튜브가, 여행가방이,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들이 물살에 이리저리 쓸려 노인에게 몰려든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여행가방을 건져 열어보니 가방 안에는 천연덕스럽게 맑은 하늘만 가득 담은 물이 쏟아진다.


다 허물어가는 집 주변으로는 쥐 한 마리가 끊임없이 출구를 향해 돌아다니고 달력 위로는 지네가 아슬아슬하게 기어 다닌다. 뱀은 아예 이불속으로 기어들어와 노인을 귀찮게 한다. 이런 상징성은 나라에서 큰 변고를 당했을 때나, 지각변동이 일어났을 때 감지하는 미물들의 특성을 복선으로 이용한 듯 싶다. 바위 위엔 풍뎅이들이 아예 배를 드러내놓고 누웠다. 키우던 염소까지 죽어버렸다. 갑자기 라디오에서 비보하나 가 날아든다. 제주도를 향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는단다. 곧이어  섬으로 앳된 고등학생 둘이 기웃거리며 노인을 찾아온다. 노인의 목소리엔 분노로 가득하다.


“어린것들이 여긴 뭐 하려고 왔어?”


이 대사에서 숨이 턱 멎는다. 영화가 온통 상징으로 가득하고, 은유로 도배했다 한들 이 영화가 주는 질문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이는 없다. 오멸감독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자기 검열부터 따졌다.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릴 때 주위를 살피는 감독의 겸손이 빛이 나는 부분이었다. 감독은 세월호사건이 터졌을 때 영화라도 만들어야만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날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서로 치유하는 영화다.


오멸감독의 작품 안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눈에 띈다. 지슬에서 제례의식을 통한 구성방법과 이번 눈꺼풀에 인용된 절구는 한국사회를 대변하는 도구의 상징성으로 비친다. 먼 길을 걸어가는 망자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마지막 떡을 준비하는 절구는 엔딩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마리 검은 쥐가 온통 집안을 들쑤셔놓아 화가 난 노인은 깨어진 절구를 우물에 던져버리는 설정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물속으로 절구에 달라붙어있던 쌀가루가 눈이 되어 흩어진다. 끝없이 하강하는 물속에는 아직도 인생의 큰 질문에 답을 못 내리는 눈 뜬 눈꺼풀이 없는 달마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노인의 분노는 깨어진 절구가 아니라 떡도 못 만들게 만든 어처구니없는 이 사회에 대해 던진 피맺힌 절규다. 침묵 속에 묵묵히 비친 도르래와 갈고리가 그 어떤 외침보다 위대한 힘을 발현한다. 이것이 영화가 주는 큰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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