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살리는 살림을 하는 주부
요즘같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이 시대가운데 살림하는 '주부'라는 직업은 과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언니, 저는 아이만 키우며 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낭비, 낭비, 낭비... 라..."
결혼 13년 차 세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나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의 한마디가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혼인한 가구당 출산율이 0.7% 에 그쳐 국가의 존폐위기를 논하는 이때에 요즘 소위말하는 MZ세대인 후배의 한마디에 좀 과장을 보태자면 그 간의 나의 지나온 세월과 자부심의 근간이 휘청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의 또래 엄마들과만 만나왔지 이제 갓 결혼해서 출산을 주저하고 있는 젊은 신혼부부는 나에겐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사람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제 겨우 나도 마흔에 들어섰는데 이렇게 생각이 다르구나..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 사람마다의 가치관의 차이 이겠으나 분명한 것은 요즘 결혼하지 않는 삶, 결혼해도 아이 낳지 않는 삶은 너무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 느껴진다. 아이는 축복이고 기업이라 믿었는데 어쩌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시간낭비'가 되었을까?
결혼과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상대적으로 여성이 결혼 전보다 훨씬 더 변화가 커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여성들의 입장에선 남성들은 결혼 전과 별반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여성들은 시댁과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몸도 마음도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에 손해 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도 처음 결혼 했을 때 내 미래가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과 나 모두 아이를 좋아해서 낳아야겠다 생각했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이리도 중요한지 그때는 잘 몰랐다.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게 더 어렵고 고단했다.
우리 부부는 재정형편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 손으로 내 아이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외벌이면 외벌이에 맞춰 삶을 꾸려나가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조부모님이 길러주시고 결혼전 하던 일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여성들이 많은 현실이지만 나는 바깥에서 하는 일 못지않게 가정주부로써의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경력이라 할 것도 없지만 경력단절보다 두려운 것이 아이들이 크는 것은 금방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리고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가치관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남편도 맞벌이만 평생 해 온 부모님 아래 자라다 보니 엄마가 아이들과 있어 주는 것을 내심 바랬기도 했고 내 뜻을 존중해 주었기에 나는 13년째 아이 셋을 낳고 주부로 살아오고 있다.
살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티도 잘 안 나서 참 힘이 빠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꽤 보람 있다.
갓난아이에서부터 사춘기 자녀가 되기까지,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들은 엄마를 참 고단하게 하지만 또 엄마인 나에게 세상에서 받아보지 못한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준다.
가슴이 찌릿하고 코끝이 시릴 만큼 사랑스러운 미소를 준다. 나를 자신의 온 우주와 같이 여겨주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아마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해 본 사람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벌고 인정받는 것도 멋지고 보람된 일이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세우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도록 세심하게 돕는 주부의 역할 또한 못지않게 귀하고 값지다.
세상은 몰라주더라도 '한 가정을 살리는 살림'을 멋지게 해내겠다 다짐하는 오늘 나는 나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