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12월이 되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송.. 빨갛고 반짝거리는 장식들..
팬시점 진열대에 빼곡히 놓인 알록달록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 어릴 적 나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겨울 특유의 시원하고 상쾌한 냄새가 있는데 여전히 코끝이 가장 먼저 기억하고 겨울이 온 것을 알려준다.
지금이야 거리에 캐럴도 트리장식도 많이 사라지고 sns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이지만 그땐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소중한 사람에게 예쁜 손카드를 써서 목도리나 장갑을 선물로 주고받곤 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침대 머리맡에다 양말을 걸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산타가 와서 나에게 선물을 놓고 갈 거라는 설렘과 기대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지만 잠이 들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선 '어떤 선물일까? 나는 착하게 일 년을 살았던 걸까? 혹시 아니면 어쩌지.' 걱정반 기대반으로 급하게 한해의 삶을 반성하는 참회의 시간을 가지며 잠을 청했다. 그러고는 한참을 잠들지 못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내 기억으론 다음날 아침 하얗고 부드러운 털에 빨간 멜빵바지를 입은 곰돌이가 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정말 정말 신기하고 행복했다. 새하얀 곰돌이를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얼굴에 부벼댔다.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힌 글씨가 왠지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익숙한 글씨체인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다지 크게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 해에는 어찌 된 것인지 5000원짜리 지폐가 올려져 있었는데 나는 이때부터 서서히 혹시 산타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이맘때가 되면 이제는 초등생 세 아이들에게 지난해와는 색다른 어떤 선물을 줘야 아이들이 좋아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는 엄마가 된 나에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예전과 좀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12월이 시작되면 가슴이 설렌다.
라떼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나 홀로 집에'를 시청하는 게 국룰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의 취향이 그대로 전해져서 이맘때가 되면 나 홀로 집에 1,2를 다 함께 시청한다.
30년 전의 나는 영화 속에 등장한 미국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 집들과 거대한 트리, 슈퍼라지 사이즈 피자에 시선을 빼앗겼었다. 주인공이 사는 집 다락방이며 푹신한 소파며 모든 것이 어찌나 부럽던지...
시간이 흐른 지금 보아도 영화는 여전히 재미있고 기발하고 주인공인 맥컬리컬킨은 참 귀엽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영화 속에 빠져 깔깔대고 있노라면 화면 속 여전히 사랑스러운 맥컬리컬킨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년에 접어든 우리는 그 시절 순수한 어린아이들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다.
11월 말이 되면 우리 가족의 가장 큰 행사는 '크리스마스트리 꾸미는 날'이 된다. 내 로망을 실행하는 날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아이들과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만은 저녁식사를 끝낸 후에 온 가족이 모여 신나는 캐럴을 틀고선 흥얼거리며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민다.
우리 세 아이들은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 동심이 살아있는 어린이이고, 차 밀리니까 결코 싫다는 사람은 감성이 메마른 어른이라는데 후자가 더 확 와닿는 거 보니 어쩌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나 보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2023년 올해도 설레는 12월은 돌아왔고 잠깐 트리옆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며 감성적인 기분에 젖어 몇 자 끄적여 보았지만 아무튼 올해 12월은 모두에게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트리를 만들면서 가족들과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도 가져보고, 속상한 일이 많았던 좋은 일이 많았던 다 훌훌 털어버리고 24년 새해를 기대하며 미리 계획해 보는 혼자만의 값진 시간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의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스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두모두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