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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Aug 10. 2023

인간관계? 알아, 쉽지 않지

4년에 걸쳐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극복한 나의 이야기

요즘따라 나에게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좌절감을 토로하는 지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일찍이 비슷한 경험을 한 나로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 하지만 생각보다 내 감정을 말로 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거듭된 고민 끝에 오랜 시간 나를 끌어내린 우울감과 대인기피증에 대해 2년 전 쓴 글을 이곳에 발행하기로 했다. 많이 고민하고 몇 번이고 단어를 고쳐 적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도 이겨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마다 상처를 대하는 방식도 이겨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다름을 알기에. 그저 당신의 그 아픔을 적어도 내가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은 후 당신이 더 이상 혼자라는 생각에 괴로워하지 않기를.




2021년 1월


지난 4년간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나에게 있어 인간관계는 그저 피하고 싶은 혹은 피할 수 없다면 적당히 버텨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여태껏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고등학생 때와 나의 20대 초반을 제외한 모든 날들이 행복했다고 답할 수 있겠다. 그 시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내 인생을 통틀어 몇 번 있을 전환점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열일곱의 나는 또래보다 단순했고 그래서 어떤 일이든 그저 좋은 방향으로만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으로 따지자면 나는 E 중에서도 파워 E였던 것 같다 (지금은 I 중에서도 엄청난 I이지만). 그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던 나는 어떠한 바운더리도 구축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만들어 가고 있었고 그때 그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누구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도 이유 없이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아이를 만난 후 처음 알게 됐다.


우리는 갑작스레 친해져 빠르게 친구가 됐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아이는 나에게 그 시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그 아이가 왜 뒤에서는 무수한 소문들을 만들어 나를 몰아갔는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에게서 떼어 놓고 나를 고립시키려 했는지, 대체 왜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지우려 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영문모를 행동이 반복될수록 그 아이에 대한 나의 미움이 커져갔지만 분명 내가 무슨 잘못을 했으려니 하며 이해해보려 했다. 제발 이유만이라도 알려주길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나를 비웃기만 했을 뿐.


나중에 아는 분을 통해 듣게 된 얘기지만 내가 가진 것들과 내 주위의 사람들을 앗아감으로써 비로소 내가 본인과 같은 위치에 있음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했다.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그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지만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벅찬 일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상처에 나날이 무너지고 있었고 겨우 지옥 같은 1년을 버텨냈다.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어질 때쯤 그동안 줄곧 그려왔던 미래도 뒤로하고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곳에는 또 다른 삶이 있을 거라 믿으며. 근데 참 이상하게도 비슷한 일은 이후에도 일어났다. 두 번쯤이었을까. 어쩌면 몇 번이고 더 있었으려나. 다만 자잘한 일들은 잊어버렸을 뿐.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대다수는 더럽게도 재수가 없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 거라고 그 사람들은 꼭 되돌려 받을 거라며 대신 욕을 해주기도 했고 몇몇은 순진하게 사람을 믿은 내 잘못이라며 모진 말을 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런 말들은 들을만했다. 왜냐면 정말 최악이었던 건 다 어린 마음에 그랬을 거라고 네가 이해하라며 위로를 가장해 나 대신 그들을 용서하던 몇몇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을 수긍하고 내 탓으로 돌리게 된 나를 마주했을 때였다. 상처받은 사람은 있지만 상처 준 사람은 없는 모순. 그 속에서 방황하다 내린 결론은 사람들 틈에서 사라져야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마치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내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듯이...


그렇게 숨어버렸다. 자그마치 3년을 말이다. 혼자 떨어져 아무도 못 들어오게 울타리를 치고 내리쬐던 한 줄기 햇살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기약 없는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다고 누가 좀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가 숨어있는 이곳을 잠시나마 맴돌고 있다면 날 좀 꺼내달라고... 왜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나약하다고 생각할 주변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남들이 생각했던 내가 아닌 어둠 속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드러났을 때 실망할 사람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져서. 그리고 약해진 나에게 또다시 누군가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젠 누구의 도움도 관심도 필요 없다며 애써 스스로를 다그치고 나를 더 깊이 가두었던 것 같다.


첫 2년은 부정과 원망의 연속이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암울하고 불투명해질 리가 없다며 끊임없이 나의 상황을 부정했고 이 모든 게 그 사람들 탓이라며 하루를 원망으로 보내기 일쑤였다. 나의 머릿속엔 항상 '만약'이라는 단어로 가득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 학교로 가지 않았다면, ' '만약 내가 그 아이를 순진하게 믿지 않았다면'과 같은 가정을 하며 이미 일어난 일들을 나의 상상에서나마 지워내고 다시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그렇게 3년째가 되던 해, 나의 모든 헛된 상상들이 결국 나를 더 깊은 우울감으로 빠트린다는 것을 느끼게 된 어느 날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드라마/영화 감상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저 최대한 많이 봤던 것 같다. 다양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나의 시선으로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많은 시간을 쏟은 또 다른 활동은 일기 쓰기였는데 드라마나 영화를 나의 감정과 연결 지어 글로 풀어내다 보니 차츰 내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에게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냐고 물어본다면 진부하지만 시간이 약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약이 된 것 같다.


또한 주위의 많은 사람들 덕분에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살면서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주었다. 대부분은 끝에 이르러서 포기를 하고 떠났지만 그들에게 실망하거나 그들을 탓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다. 나를 마주 보고 이해하려 애써줘서. 그 배려와 노력들이 정말 따뜻했으니까. 물론 내게 다가오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점점 더 깊이 숨으려 했고 그런 나를 쫓아오기엔 힘이 들었을 것을 안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웠고 내 행동으로 인해 혹시나 상처를 받았다면 꼭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태껏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내 긴 방황을 함께 해줘서 그리고 내 곁을 지켜줘서 덕분에 숨 쉴 수 있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갇혀있던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누군가에게, 또 멀리 있지만 깊이 숨으려 할 때면 알아보고 다독여준 누군가에게, 다 알고도 기꺼이 내 인생에 뛰어들어 이 모든 것들을 함께 겪어준 누군가에게도 꼭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 내 탓이 아니라고 미워해도 괜찮다는 투박하지만 온기 있는 위로에 참 많이도 울었다.


길었던 방황을 끝낸 후 다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나에게 늘 거기에 있겠다고 용기를 준 나의 사람들에게 감동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인연은 끝이 있다지만 그리고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힘껏 끌어안을게. 이젠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되어 당신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꼭 옆에 있어줄 거야. 다시 무럭무럭 자랄 테니 지켜봐 줘. 끝으로, 참 길었는데 잘 견뎌줘서 고마워. 수고했어. 너는 멋진 사람이야. 사랑해.


#인간관계 #우울증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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