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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Aug 09. 2023

'우리'에서 다시 '나'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 연애와 이별을 마주하는 나의 자세

나는 이별을 겪을 때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연애를 할 때는 오히려 나의 기분이나 감정을 글로 자주 남기지 않지만 이별을 한 후에는 꼭 나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하려고 짧게라도 기록을 한다. 그렇게 한 번 글을 쓰면 나를 끌어내리는 우울감과 무력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는 것 같아서라고 해야 할까. 아래의 글들은 이별을 겪으며 써 내려간 짧은 일기인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과 힘든 연애를 했고 많이 원망도 했지만 나에겐 소중한 감정이라 꼭 글로 담아내고 싶었다. 나의 짧은 일기를 통해 당신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





- 01:13 AM 어느 새벽에 -

화난 게 아니야. 상처받은 거지. 좀 더 노력하면 나를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애써 웃으며 발버둥 쳐왔어. 근데 내 노력은 당연시 여겨졌고 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다고 했지. 내가 원했던 건 관심과 사랑이었는데 그마저 너에게는 고단한 일이었던 거야. ‘나는 너한테 어떤 존재인 걸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같이 했던 것 같아. 너랑 함께 있을 때면 외로움이 몇 배나 더 크게 다가와서 괴로웠어. 차라리 혼자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외로움이 낫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너에게 말을 건넬 때면 줄곧 다른 곳을 보던 네가 가끔은 감당이 안 될 만큼 밉고 서러워서 주저앉아 울고 싶기도 했어. 나에 관한 것들은 기억 못 하는 너이지만 다른 모든 것들은 곧 잘 기억하는 너를 보면서 너한테 나는 겨우 그 정도라는 사실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그러다가도 네가 건네는 작은 손길에 금세 마음이 풀리는 나를 볼 때면 가엽고 불쌍했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얘기할 때면 너는 우선 방어 태세를 취했지. 왜 그게 중요하냐고, 난 왜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으냐는 질문을 받곤 했어. 난 그저 너의 하루를 궁금해했을 뿐이고 나의 하루를 궁금해해 주길 바랐을 뿐인데 말이야… 널 위해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쏟은 내 정성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 너에겐 나의 부탁이 부담이고 짐이었구나. 그리고 나는 대체 왜 이렇게 미련해서 서로 안부를 묻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궁금할까. 바보같이…


- 해가 쨍쨍하던 어느 오후에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햇살이 내리쬐던 오후, 혼자 방 안에 덩그러니 남아 울었어. 맥락도 없이 터진 눈물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한참을 울었어. 끝이 왔음을 알았던 것 같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연한 희망에 기대를 걸면서 애써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감히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맡기려 했어. 무수히 보이던 신호에도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달래며 보낸 짧은 하루들과 유난히도 길었던 밤들. 우리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희생하며 겨우 관계를 유지하던 나날들이 지나고 오늘 유난히도 날싸가 좋던 그 오후에 순간 끝이 코앞에 왔음을 실감했어. 소박한 행복에 미소 지었던 날들이 아닌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울었던 밤들이 먼저 떠올랐던 그 순간 앉은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 그저 힘들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던 연애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어. 아무리 애써도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이해받지 못했던 시간들과 이해를 바랄수록 이 관계의 문제로 여겨졌던 나. 온통 알 수 없는 것들이었어. 네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내며 내가 사랑하던 나의 모습을 잃어가던 어느 날,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우는 나 자신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 관계로 인해서 순간마다 괴로운 것보다 차라리 혼자가 되더라도 문득 한 번씩 외로운 게 낫지 않을까.”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어. 그저 잡고 있던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을 놓는 게 무서워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뿐…


- 한 밤 중 어느 순간에 -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잘 없어. 내 마음대로 돼야 내 마음인데 무엇하나 쉽지가 않아.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막아보려 해도 결국 그 사람을 사랑하고야 마는 것처럼. 또 이미 끝나버린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을 잊어보려고 애써 발버둥 쳐도 아침에 눈을 뜨면 노력이 무색하게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렇기에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을 누구에게 준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야. 벅찬 마음을 안고 열심히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여정은 고되고 때로는 외롭지만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을 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너를 차차 잊어가는 이 순간에도 너를 원망하기보다 살아가며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하고 아낄 수 있었던 내 마음을 소중히 하기로 했어. 최선을 다해서 달려갔던 나에게 정말 예뻤다고 말해주고 싶어. 끊길 듯 끊기지 않던 연락이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결국 아득해졌어. 늘 가깝게 있다고 생각했던 네가 이젠 가깝지 않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겠지. 이 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모르게 잡고 있던 끈을 비로소 놓게 될 거야. 그걸 알기에 지금이 소중해. 그냥 남이라고 치부하기엔 여전히 소중한 인연이었으니까. 내가 너에게 같은 의미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끝이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너와 함께한 추억이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았어.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있었어. 그거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에서 '너'와 '나'로, '연인'에서 '남'으로 돌아가겠지만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아. 난 잘 지낼 거야. 너도 잘 지내.





이별은 사랑한 기간에 상관없이 아프게 마련이다. 짧은 기간 연애를 했다고 해서 이별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수년동안 연애를 했다고 해서 꼭 더 아픈 것만은 아니다. 함께한 기간에 상관없이 그 마음이 깊고 그 자체만으로 소중했다면 이별은 언제나 그 마음에 비례하는 아픔을 주는 게 아닐까. 또한 이별은 공평하다. 누가 누구에게 더 큰 상처를 줬든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이별은 공평하게 아픔을 준다. 그래서 이별은 사랑의 연장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과정들을 다 이겨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야만 비로소 이 관계가 끝이 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이별 #연인 #관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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