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만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행 중에 노부부를 마주하게 되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들이 함께 해 온 시간과 세월이 존경스러워서.
백발의 유럽 할아버지를 보면, 우리 할아버지도 함께 생각이 났다. 내가 유럽여행 중이라는 걸 아시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내가 가는 나라는 어떤 말을 쓰고, 어떤 음식을 먹을지 이것저것 물으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훤하다. 날씨가 어떤 지간에 무조건 따뜻한 옷을 챙겨야 한다며, '윗도리'를 제대로 챙겼는지 확인하셨을 거다. 타지에 가면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고, 다 큰 손녀에게 용돈도 챙겨주셨을 거고, 할아버지는 새로운 곳에서, 더 넓은 곳에서 견문을 넓히는 건 좋은 경험이라고 나의 유럽행에 대해 분명 장하다고 해주셨을 거다.
한편으론 내가 집을 나서서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까지 할아버지는 한 달간 걱정으로 보내셨을지도 모른다. 생전 계실 때도 저녁 9시만 넘으면 내 휴대전화가 울렸으니 말이다. '시간 늦었다, 어서 들어오너라, 언제 오느냐' 그때는 걱정인 줄도 모르고, 그저 노파심에 하시는 잔소리인 줄만 알았더랬지.
그땐 사랑인 줄도 모르고.
11월의 겨울은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던 때이다. 어느 날 밤에는 혼자 기도를 한 적이 있다. 종교도 없는 내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했던 말은 '죄송하다'였다. 할아버지한테 전화가 오면 대충 통화하고 끊어버린 나, 무심하게 '할아버지, 나갔다 올게요!' 하고 후다닥 나가버린 나. 부족한 내 모습만 떠올랐다. 내가 할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온 마음을 다해 '할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지 마세요, 편하게 가실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일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는 일뿐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계셨던 분이 곁에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집이 참으로 공허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녁마다 엄마와 나는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할아버지 방에서 세어 나오는 가요무대 소리를 대신하듯, 할아버지의 콧노래를 대신하듯, 할아버지가 계셨던 집의 공기와 온도를 대신하듯, 엄마와 나는 공허함을 대화로 채워나갔다.
지금도 사실 믿어지지 않는다. 그냥 잠시 할아버지가 긴 여행을 떠난 것 같다. 그땐 몰랐다. 계시기만 해도 가득 채워졌던 집안의 온도를, 지나고 보니 그러했다.
할아버지의 존재만으로도 우리 집은 참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