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롤로 May 08. 2021

어버이날인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한 달간 '오늘'기록 프로젝트


어버이날인데,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었다.


서른을 넘기고, 서른두 살쯤 되면, 생활비 걱정 없이 부모님께 용돈을 턱! 턱! 턱!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아닌가 보다. 신세 한탄을 하자면, 작년과 올해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린다^^


프리랜서 작가인 나에게 일은 돈과 바로 직결된다. 작년에는 일이 많이 들어와서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겠는데?! 올해 뭔가 이루겠는데?!' 하며 쓸데없는 설레발을 쳤다. 그런데 웬걸 제작사와 문제가 생겨 돈을 토해내는 일이 생겼는가 하며, 올해는 들어가기로 했던 프로그램이 엎어지기도 했다. 설상가상 건강까지 좋지 않아서 그나마 들어오는 일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이 많을 때는 몰랐는데, 일은 내게 삶의 원동력이고, 자존감이었다. 내 이름 석자 올라가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는데, 자의로 타의로 일을 못하게 되니 우울했다.


우리 어머니는 늘 안정적인 직장, 고정적인 수입을 원하셨다. 통화할 때마다 "엄마 말은 죽어도 안 듣는데~ 회사 들어가라카니까, 니가 하는 일이 힘들다꼬~ 직장생활이 망고 땡이 데이~"라는 말을 하시고, 하루 걸러 다다음 날에는 "누구는 이번에 결혼한다카던데~ 그냥 니도 시집이나 가라~"로 마무리하신다. 한결같으신 우리 어머니,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몇 년째 똑같은 래퍼토리시다.^^  


통화의 끝은 기승전'직장', 기승전'결혼'


그런데 임파선 멍울로 결핵 판정을 받고 나서부터는 그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라'며, 다독여주셨다.


생각해보면 늘 조급했다. 서른이 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길 줄 알았다. 그래서 기다린 서른이었는데, 여유는 개뿔 늘 초조하고, 조급하다. '언제쯤 괜찮아질까, 서른 하나가 되면 괜찮아질까?', '서른 하나가 됐으니,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은 여유가 생기겠지?!' 현실은 노! 절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련만 가져다 줄 뿐... 그렇다면 서른둘이 되면 어떨까? 작년에 힘들었으니까 올해는 으샤 으샤 해서 토해낸 돈보다 돈을 더 모아야 하고, 결혼자금도 모아서 내년쯤엔 결혼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2021년 하고도 5월이 된 지금.. 글쎄다^^  


어버이날 기념 용돈을 드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서른두 살의 딸은,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카톡 메시지를 남기는 일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이버에 있는 어버이날 카드를 이용해서 메시지 보내기 ㅜㅜ


이에 대한 답장은 사랑한다는 이모티콘을 발한 아버지와, 딸이 최고라고 남긴 어머니, 그리고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 어버이날이고 해서 외할머니께 가고 있다고 하셨다. 외숙모도 오시고, 같이 쑥떡을  먹을 거라는 이야기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끊었다.


그러다 문득,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내게 외할머니 밖에 안 계시는데... 오늘 외할머니와 엄마가 꼭 맛있는 식사를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이달 카드값나갈 것 까지 생각하면, 생활비는 부족하지만, 마음을 전하는 건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적지도, 많지도 않은 10만 원을 어머니 계좌로 보내드렸다.


10만 원이라도 보내고 나니, 찜찜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은 풀렸다. 완벽히는 아니고... (왜냐하면 아버지한테는 못 드렸으니까^^)


내년에는 마음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임파선 결핵 환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