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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매너 Nov 23. 2023

노견과의 런던살이 Intro.

무에리가 영국으로 왔다.

남편과 나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 한국에 있는 강아지를 영국으로 데려오는 것. 

비행기 태워서 슝 하고 날아오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섬나라인 영국은 동물 반입에 있어서 엄청나게 까다롭다. 백신을 맞히고 항체가 생기기까지 4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고 주인과 동일한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없으며 일반 비행기 화물이 아닌 지정 cargo에 태워 보내야 하기에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사실 영국에 있는 동안 계속 데려오고 싶었지만 런던 생활 초반에 코로나가 터졌고 이후에는 폭등하는 물가와 집세로 두 입 풀칠하기 바쁜 우리가 강아지를 키운 다는 것은 사치라 생각했다. 그러다 타지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그냥 아무 생각 말고 데려오자는 행복회로와 현실고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일단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우리 집주인이 집을 팔 거라는 충격선언을 했고 거처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 강아지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울한 연말이 지나고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열심히 집을 팔기 위해 온갖 난리를 친 집주인의 노력에도 얼어붙은 영국의 부동산 시장 덕분인지 계약 취소된 집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20%가 오른 월세와 함께.


'이제 다 필요 없고 이건 운명이다.'


엄마에게 조심스레 강아지의 영국행을 제안했고 여러 사정으로 부모님도 강아지를 보내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셨다. 속전속결로 영국행을 위한 절차들이 진행되었다. 들어가는 비용은 부모님, 친오빠, 나의 N 분의 1로 충당했고 백신 접종, 건강검진, 항체 검사 등을 거친 4개월 후 강아지가 런던에 도착했다. 하루하루가 애달프고 가슴이 들끓었다. 강아지가 비행기를 탄 직후부터는 요동치는 나의 불안과의 싸움이었다. ‘행복한 훈련사’에서 강아지와 여행을 다니는 견주가 나오는 편에서 사실 개들은 비행기 타면 누워서 가니 더 편할 거라는 개통령의 말을 계속 되뇌며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더 신경 쓰였던 것은 도착 직후였는데, 비행기에서 강아지가 따단 하고 내려서 내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역소에서 서류 검토 후 인수인계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인천발 비행기가 런던에 저녁시간에 내린다는 것. 즉 검역소 직원들의 퇴근시간이기에 도착 당일에 인수받고 싶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거나 아니면 꾹 참고 다음날 인계가 가능했다. 담당 에이전시가 전달해 준 추가 비용은 50만 원. 엄청나게 갈등했다. 내 가족인데, 일생의 한 번인데, 벌써 이만큼 돈 썼는데 더 아껴서 뭐 하나란 생각과 이 돈이면 1박 여행 가서 맛난 거 먹고 하하하 웃으면서 놀 수 있는데란 실리적인 고민이었다. 검역소에 있는 동안 풀어나 줄까 이미 13시간을 켄넬 안에 갇혀서 쉬야와 응가를 참으며 날아온 스트레스 잔뜩인 10살의 노견에게 말 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과 낯선 곳에서 잘 지낼까? 하는 걱정이 머리털 끝까지 들었지만 자본주의의 나는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런 거 하나하나 금액을 책정하는 영국이란 나라가 더럽게 치사하다고 느껴졌다.



떠나기 전 동물병원에서 하룻밤.
긴장된 표정이 보인다. 무슨 일인가 싶었겠지.



다음날 설레고 애타는 마음으로 히스로 공항 터미널 4 옆에 위치한 Animal Reception Centre 검역소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나와 검역소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몇 번을 맞는 정류장인지 버스는 언제 오는지 버스 안내인에게 묻고 핸드폰으로 체크를 하고 있는데 나와 남편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고 눈이 마주친 우리에게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검역소 가?, 너네도 강아지 데리러 가는구나!” 상기된 표정,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 분명히 남편과 나의 얼굴도 똑같았을 것이다.

드디어 검역소에 도착했다.



만남의 광장 ARC! 이때부터 기분이 몽글몽글 해졌다.



검역소 주변엔 통관된 강아지를 기다리를 차들이 몇몇 주차되어 있었다. 커플과 같은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제치고 재빠르게 걸어가 검역소 문을 열었다. 왠지 강아지를 한시라도 더 빨리 만나기 위해서라기보다 천천히 흘러가는 영국의 업무 방식을 생각하면 먼저 가서 접수하는 게 조금이라도 일이 빠르게 진행될 거 같아서였다. 예상대로 접수 후 몇십 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대기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부러 더 긴장하고 설레라는 건 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문.



그렇게 두근 되는 심장을 부여잡고 오매불망 발을 동동 굴렸다. 얼마쯤 지나서 문 쪽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문이 열리며 환하게 웃는 직원분이 불안을 감소시켜 주는 쫄티를 입고 댕댕 걸음으로 걷는 우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그 순간은 묘사하기 어려운 감동과 형언할 수 없는 반가움 그 차제였다. 밤잠 못 이루며 쌓아온 걱정과 달리 검역소에서 하루를 잘 보낸 건지 강아지의 표정이 좋아 보였고 우리는 감격의 상봉 시간을 맞이했다. 담당 직원분은 강아지가 1번과 2번 즉 대소변 모두 잘했고 밥도 잘 먹었다며 친절하게 상태에서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아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번 이렇게 행복한 사람들만 볼 터이니 참 좋은 일터임이 분명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커플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족들에게 강아지와의 만남을 알렸다. 엄마, 아빠, 오빠 모두 그 어떤 때보다 열렬하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막내의 도착여부를 알고자 했다. 남편은 다시금 우리 가족에게 강아지의 존재란 어떤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상봉의 해피함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처음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야 하는 강아지가 걱정이었지만 이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차멀미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우버를 타기도 좀 미안했다. 영국은 버스가 다 저상버스라 흔들림도 적고 딱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지만 낡을 대로 낡은 영국의 지하철은 귀 찢어지는 소음에 예상대로 우리에게 코 박는 그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긴장한 뒤통수


두려움으로 인한 귀여움




그렇게 무에리가 런던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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