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느낀 영국에서 강아지 기르면 좋은 점들.
다행히도 무엘이는 영국에서의 견삶에 빠르게 익숙해져 갔다. 예전에 부모님이 이사를 하시면서 환경이 바뀐 탓인지 피부병이 심하게 난 적이 있어 영국에서의 새로운 생활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로 또 피부병 도질까 걱정해지만 이젠 안심해도 될 듯하다.
우리 부부가 기대했던 것보다 강아지와 영국에서의 하루하루는 매우 만족스럽다. 물론 어딜 가든 무엘이를 항상 데리고 다녀야 하고 특히나 영국 외의 해외여행은 이동방법이나 (강아지를 데리고 유로스타를 탈 수가 없음) 브렉시트로 복잡해진 규제 때문에 여행을 가고 싶어도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 강아지를 기르는 건 족쇄를 찰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귀엽고 무거운 족쇄덕에 우리 부부는 웃는 시간이 더 늘었다. 어느덧 무엘이가 영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으니 기념으로 영국에서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로 공원이다.
런던은 ‘어반 포레스트 (Urban Forest)’로 분류될 만큼 도시의 21%가 나무로 뒤덮여 있다. 인구 밀집도 높고 땅값도 세계적으로 비싼 도시에서 자연이 주는 한적함을 경험할 수 있는 녹색공간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부러운 부분이다. 공원에서는 잔디를 발로 밞고 드러누워도 뭐라 하는 이 없고 카페나 식당도 마련되어 있어 한적하게 거닐다가 커피 또는 맥주 한 잔 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그런 곳에서 강아지들은 목줄에서 벗고 마음껏 뛰 놀 수 있다. 일부 정원들이 잘 가꿔진 곳은 목줄을 해야 하지만 웬만한 곳은 제한이 딱히 없다. 위협적인 강아지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성격이 좋다. 혹여 입질을 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강아지들은 이미 입마개를 쓰고 있거나 주인들이 강력하게 통제한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무엘이는 온갖 종류의 강아지들과 스몰토크를 나누며 영역표시를 하느라 바쁘다. 특히 셀티 특성상 짖는 거에서 희열을 느끼는데 눈치 볼 일 없이 마음껏 짖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애견동반 가능한 장소가 많다는 것이다.
카페, 서점, 무인양품, 리버티 백화점, 옷가게 등 생각보다 입장가능한 곳이 많다. 일반 상점들은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가능여부를 물어보는데 보통 당연하다는 듯이 허락해 주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된다. 가장 의아했던 동반가능한 장소는 갤러리였는데 개들이 들어와서 깽판 치는 걱정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물론 테이트 모던 같은 내셔널 단위의 뮤지엄은 안된다.
아무리 개들에게 친화적인 영국이라지만 레스토랑에 애견동반은 어렵다. 하지만 대신 펍은 99% 가능하다. 펍에서 요청하면 강아지 물그릇에 물을 담아주며 보통은 강아지 쿠키를 상비해 놓기도 한다. 아쉽게도 슈퍼는 모든 곳이 애견동반이 안된다. 입구에 강아지를 묶어놓고 장을 보는 주인들도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 때문에 둘이 즐기던 장 보는 시간은 더 이상 할 수 없고 혼자 낑낑거리며 짐을 지고 다니게 되었다.
세 번 째는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버스, 지하철과 기차 모두 개를 데리고 켄넬 없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노견을 끌고 이곳저곳 다니는 게 무엘이의 체력상 쉬운 건 아니지만 자동차가 없는 뚜벅이 부부에게 강아지와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활동영역을 넓혀주었다.
택시의 경우 우버펫을 부르면 되는데 추가 요금(£4-5, 약 7-8천 원)을 내고 인간 3명에 개 1마리만 가능하다. 4인에 1마리의 경우는 조금 곤란해진다. 부모님이 영국에 놀러 오셔서 넷이 움직이게 되었는데 매번 우버 기사에게 미리 연락해서 이해를 구해야 했다. 한 번은 Volt를 불렀고 사람 넷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라고 전달했다. 기사는 도착하고 무엘 이를 보더니 스몰이 아니라 빅이라며 우리에게 언짢음을 잔뜩 표현했다. 무엘이는 9.8kg로 소형견은 아니지만 대형견도 아닌데… 미듐이라고 해야 했던가. 굳이 왜 성질을 내는 건지 기분이 상했었다. 털이 많아서 그렇지 무릎에 올리면 쏙 들어가는 똥덩어리인데. 일반 블랙캡 택시의 경우 기사님 재량에 따라 다른 듯하다. 에든버러에서는 일반 우버 기사님은 거절했고 블랙캡 기사님은 당연한 오케이 사인을 주시고 내리셔서 무엘이를 잔뜩 이뻐해 주셨다.
반려견과의 기차탑승은 최고의 이점이다. 해외여행이 어렵기 때문에 무엘이와 갈 수 있는 건 영국 국내 여행뿐인데, 비행기는 기피대상이니 기차가 최고의 수단이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탑승도 당연히 무료이다. 최근 스코틀랜드 여행을 무엘이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에딘버러까지 4.5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잘 갔던 거 같다. 단, 기차를 탈 경우엔 강아지를 무릎에 올리거나 안고 있으면 안 되고 바닥에 두어야 한다. 무엘이는 바닥에 있는 것보다 항시 소파를 추구하는 K견이라 갑자기 내 무릎에 올라왔고 때마침 검표원이 다가와 강아지는 바닥으로 라는 짧은 경고를 주어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마지막으로 사회성이 좋아진다.
강아지의 사회성이 아니라 나 개인의 사회성도 좋아지는 것 같다. 무엘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한 번씩은 모르는 사람과 스몰토크를 나누게 된다. 그저 지나가면서 무엘이를 쳐다보고 그윽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미소로 환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엘이를 만나고 오늘 행복한 순간을 느꼈다는 “He makes my day.”라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낯선 이들과의 소소하지만 따뜻한 커뮤니케이션들은 그동안 잊고 있던 인간애를 조금씩 찾아가게 해주는 것 같다.
걱정도 많았지만 무엘이가 지금 내 옆에 있어 참 좋다. 무엘이가 내게 주는 행복만큼 나도 내 노견에게 그 행복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