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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Nov 30. 2017

샤워 좀 그만해

브라질 사람의 샤워 사랑

(이미지 출처: 구글검색)


브라질에서 지내던 어느 날, 데이빗과 함께 세차를 하고 있는데 이웃집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데이빗과 이 아저씨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마치 매일 만나는 친한 이웃 사이인 것 마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모자라 사회 이슈, 정치 얘기까지 온갖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비가 안 와서 큰일이에요.”

“그러게요. 몇 달째 가뭄이네요.”

“제대로 된 대책도 못 세우고 정부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는지 몰라요.”

“맞아요. 한국에 가보니까 저수지나 댐같이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더라고요.”


무슨 문젯거리가 있으면 해결책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네들 국민성과 정부를 비판하기에 바쁜 브라질 사람들. 빨리 대화 끝내고 집에 들어가고 싶어 그냥 듣고만 있던 내가 한마다 껴들었다.

여러분들이 샤워하는 횟수만 줄여도 물 부족 문제 해결될 것 같은데요.


자원봉사자로 모잠비크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수도시설이 안되어 있는 시골이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물을 떠 와 울타리가 쳐진 작은 공간에서 샤워를 해야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참고 참다 결국 머리가 간지러워 견디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샤워를 한 나와는 달리, 내 룸메였던 브라질 친구는 이틀에 한 번씩 샤워를 하면서도 매일매일 샤워를 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이후 프로젝트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브라질 친구가 당부했다. 

일주일 만에 샤워했다는 말은 절대 브라질 남자한테는 하지 마.


브라질 사람들의 샤워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 하루 2번은 기본이고 활동을 많이 했다면 3번, 4번도 서슴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의 계절 차이가 확실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 년 내내 햇빛 쨍쨍한 날씨 탓에 자주 씻어야 하는 건 알겠다. 그렇지만 서늘한 날 밖에도 한 발자국 안 나가고 집에만 있었는데도 자기 전엔 꼭 샤워를 해야 하고,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이불속에만 있었는데도 자기 전엔 꼭 샤워를 해야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브라질의 일주일 평균 샤워횟수가 12에 가깝다!

(출처: https://www.apartmenttherapy.com/who-showers-most-216273)



시댁에 놀러 간 날, 하루는 씻지 않고 거실에서 뒹굴고 있었다. 데이빗이 얼른 샤워하라는 말에 귀찮아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안 한다고 했는데, 옆에서 이 말은 들으신 시어머니는 정색을 하셨다. “왜 샤워를 안 해?” 시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말씀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브라질 사람 데이빗의 샤워 사랑은 한국에 와서도, 추운 겨울에도 변함이 없다. 자기 전에 샤워 대신 양치질, 세수, 발 닦기만 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그 시간에 그냥 옷 벗고 상쾌하게 샤워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전날 밤 말끔히 샤워하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왜 외출하기 전에 샤워 안 하느냐고. 빈정 여러 번 상하고 말다툼도 많이 했다.


데이빗이 물어봤다. “샤워”가 한국어로 뭐냐고. 

생각해보니 한국어에 “목욕”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이건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몸을 불리고 때를 박박 미는 의미가 연상되니 “샤워”와는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목욕: 머리를 감으며 온몸을 씻는 일
샤워: 소나기처럼 뿜어내리는 물로 몸을 씻는 일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샤워를 잘 안 하는구나" 

(그래.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줘.)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바로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았던 나처럼, 데이빗은 외출하기 전과 잠자기 전에 샤워해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겠지. 그렇게 30년 넘게 당연하게 체득한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긴 둘 다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설명하고 굳이 그렇게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샤워를 많이 하면 오히려 피부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의견(이건 절대 동의하지 않더라), 물 낭비하면 안 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로 설득하니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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