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까 Feb 14. 2018

내 이름을 불러줘

한국과 브라질의 호칭 차이

지난 주말 큰고모님 칠순을 축하하려 친지들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결혼식 이후로 따로 만나 오랜 시간을 보내며 알아갈 기회가 없었기에 데이빗에게 고모네 가족을 소개했다. 

여기는 큰고모, 여기는 고모 아들, 여기는 고모 아들 아내, 여기는 고모 딸, 여기는 고모 딸 남편. 

이렇게 친족관계와 호칭을 알려주고 나면 데이빗은 (발음도 어렵고 곧 잊어버릴) 그들의 이름을 물어본다. 그런데 사촌언니와 오빠의 남편과 아내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나 또한 그들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한창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 고모가 올케(내 남동생의 아내)를 ‘다온(딸이름) 엄마’라고 부르셨다. 한 사람을 지칭할 때 ‘누구의 엄마’로 얘기하는 걸 처음 들었는지 데이빗은 재미있다며 크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써먹는다. 할머니를 가리키며 ‘경윤(아빠이름) 엄마’, 나에게는 ‘현희(엄마이름) 딸’, 등등 생각지도 못한 응용력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인이 이렇게 어른 이름을 함부로 썼다면 다들 노하셨겠지만.


데이빗이 한국에 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하나가 바로 이름에 관한 것이다. 한국어에는 대우법이라는 게 있어서 윗사람에게는 이름이 아닌 직함이나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으로 부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선생님, 사장님 등 존칭 표현을 쓰다 보니 굳이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끔 데이빗이 그 사람 이름은 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단골집 식당 주인, 핸드폰가게 점원 등), 내가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통성명도 안하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브라질(대부분의 서양 문화권)에서는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부르다 보니 이런 한국문화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그 반대의 경우였던 것 처럼…


물론 브라질도 포르투갈어에 할머니, 시어머니, 조카 등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말과 사장님, 선생님 등의 직함이 있고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나고 자란 습관이 있어 시어머니에게는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그런데 조카 애 하나가 자기 할머니에게 친구에게 하듯이 ‘마리아 왔어?’라고 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사원, 대리, 과장 등의 부르기 쉬운 직위가 아닌 컨설턴트, 선임컨설턴트, 수석컨설턴트 등의 직함을 사용했고 나는 그냥 컨설턴트였다. 선임님, 수석님 등 붙일 호칭이 없다보니 외부에서는 내가 대리도 되었다가 차장도 되었다. 내부에서는 내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불렀는데, ‘-씨’는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는 걸 아는 직원은 없는 듯했고, 이를 대신할 말도 찾기 어려워 한참 어린 동생들과도 말을 놓지 않았다. 그냥 모두 다 ‘-님’이라고 호칭을 통일하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부르는 말 하나에도 높임과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는 걸 알고 있으니 외국인인 데이빗에게도 그렇게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번은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환자를 부를 때 ‘홍길동님’ 이라고‘-님’자를 붙여주면서 데이빗을 부를때는 아이를 부르듯 그냥‘데이빗’ 이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데이빗이 한국사람 이었다면 ‘형’이나 ‘오빠’를 붙여 불렀을텐데, 나이가 많든 적든 이름 하나 달랑 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한국어 초급 수준의 데이빗은 문장마다 ‘-요’를 붙여 정중하게 말하는 걸 보니 더 심기가 불편해진다. 정작 본인은 괜찮다는데 괜히 내가 오지랖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는 똑같이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도 어린 사람에게 그냥 이름으로만 불린다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집은 어디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