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3회 차
두 번째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결제해야 할 바우처 카드가 없었다. 내 명의의 신용카드 두장을 남편과 나눠 쓰고 있는데 그날 내가 다른 카드를 가져온 것이다. 집과 상담센터는 4km밖에 안 되는 거리이지만, 배차간격이 긴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갔다가 오려면 하루를 다 보낼 것 같았다.
집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 안 하고 냉랭하게 지냈던 남편이지만 무뚝뚝하게나마 내 전화를 받았고 카드를 갖다 달라는 내 부탁에 군말 없이 알겠다고 했다. 십 년을 같이 살며 볼꼴 못볼꼴 다 보고 사는 남편이지만 아쉬운 소리 할 때는 마음속 그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존재가 내 행동을 붙잡기도 한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이의 얼음같이 차디찬 공기는 조금씩 따뜻해졌다. 물론 하룻밤 사이에 하하 호호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에게 아이를 위해 밝은 분위기를 만들자고 했다. 그 한 주 동안 난 동기부여가 되는 영상을 찾아보고 강연도 가고 새로운 운동으로 줌바를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 주로 남편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당연히 욱하는 순간들은 많이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간보다 조금은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세 번째 상담을 시작하면서 상담사는 내 얼굴이 밝아졌다고 했다. 기분이 한없이 바닥일 때는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으로도 난 이 세상 제일 비참한 여자가 되지만, 큰 갈등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에서는 내 마음도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하다. 나는 몰랐지만 이런 게 겉으로 드러났나 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고민 상대는 아이가 되었다. 요새 부쩍 짜증이 많은 아이.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냈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7살 딸아이와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이는 왜 나에게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술술 이야기하지 않을까. 내가 뭔가를 물어보면 모른다고 회피하거나 다른 엉뚱한 이야기로 주제를 돌리기 일쑤다.
"아이도 저처럼 속상한 일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담아두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한 번은 아이가 유치원 같은 반 남자아이가 못생겼다고 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반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 아이였기 때문에 계속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걱정이었지만 '속상했겠다'라며 감정에 동의해 주는 것 밖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그 아이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어 속상하다고 했는데, 사실은 학기 초에 '한번' 못생겼다고 한 말이 아이의 뇌리에 꽂혀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ㅇㅇ야, 넌 못생기지 않았어. 다들 예쁘다고 하잖아. 그 아이도 너한테 예쁘다고 하고 싶었는데 쑥스러워서 못생겼다고 잘못 말한 걸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이제는 이렇게 위로를 해주고 있지만 아직 아이는 못생겼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우지는 못한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나에 대한 평가나 안 좋은 말을 들었을 때 계속 그 말과 상황이 맴돌아 신경을 쓴 적이 많았다. 자꾸 생각나서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게 싫어 일부러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했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릴 때보다 나이가 들면서 좀 덜 신경 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마음속 한구석에 계속 박아놓기는 했었던 것 같다.
왜 그런 말들에 몰두가 되나요?
남에게 안 좋은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상하고 속상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나는 더 의식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던 걸까? 나에 대한 평가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좋은 말만 들으려고 엄청난 애를 썼었고 조금이라도 안 좋은 평가를 받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잘하고 싶고 잘하려다 보니 못하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래서 시도도 안 하고 그만둔 일들도 많다.
"아이가 무슨 일을 하다가 잘 못하면 뭐라고 하시나요?"
그럴 수도 있지.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나에게는 너그럽지 못했구나...
그러한 승부욕이 성취를 위해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승부욕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고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을 잘 못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동안의 나의 성적과 이력이 대단한 성취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어딘가 합격했을 때조차도 지원자가 없어서 내가 된 건 아닐까 하며 내 자리를 비하하곤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니야.'라며 현재 주어진 상황을 감사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부반장 정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반장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열심히 해봐.
더 큰 꿈을 꾸는 건 자책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응원이 필요하지.
나에게는 잘하고자 하는 승부욕이 크다. 그런데 잘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것이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이번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이런 마음이 내 생활 속 대부분의 행동과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에는 열심히 해보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다.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나를 좀 더 보듬어주고 너그러워지자.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