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그스름한 잿빛
그날의 하늘은 불그스름한 잿빛이었다.
그날은 전투부상자처치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전투부상자처치 훈련은 실제 상황을 가정하여 교전 중 생긴 환자를 엄호하며 은ㆍ엄폐물로 후송하고, 간단하게 응급처치를 한 뒤 목적지까지 후송하는 훈련이다. 의무병으로 입대한 나는 적어도 이 훈련만큼은 잘 해내겠다고 전부터 다짐했었다. 우리 분대는 훈련이 끝난 뒤 하나의 팀으로 시험을 치렀고, 나는 동기들의 기대를 받으며 응급처치 역할을 맡게 됐다. 어느덧 우리 분대 차례가 됐고, 나는 긴장 속에서도 차분히 응급처치를 마쳤다. 나름 성공적으로 시험을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조교들이 적용된 지혈대를 확인하더니 불합격이라며 우리 분대를 시작점으로 돌려보냈다. 확인해 보니 환자의 다리에 적용한 지혈대가 조금 느슨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지혈대를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은 의무병으로서 해야 할 응급처치 중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그러나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나 하나 때문에 우리 분대 전체가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동기들은 따듯하게 웃으며 괜찮으니 다시 해보자고 말했지만, 절망에 빠져있던 나에겐 그런 말과 웃음도 조소로 느껴질 뿐이었다. 긴장한 탓에 재시험에서도 같은 문제로 합격하지 못했고, 결국 재시험의 재시험까지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생활관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의 훈련소 생활은 무척 고단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훈련을 받는 것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웠던 까닭이었다. 그래도 고된 훈련들을 하나둘씩 나름 무사히 마치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대견해 하며, 마음을 다 잡고 훈련에 임하려 노력하던 차였다. 그러나 의무병으로서 내가 가졌던 최소한의 자긍심마저 무너졌던 그날, 입대한 지 불과 2주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밤새 온갖 괴로움에 시달리며 잠을 설쳐야만 했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대체 내가 군인으로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길고도 긴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식당 출구에 한 어미 제비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분주히 작은 나뭇가지들을 모아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