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회색빛
그날의 하늘은 진한 회색빛이었다.
그날은 수류탄 투척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수류탄 투척 훈련은 육군훈련소에 입소하기 전부터 걱정이 무척 많았던 훈련이었던 것이, 자칫 잘못하면 나와 내 전우들의 목숨에 위험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대장님이 그날의 훈련은 연습용 수류탄으로만 진행된다고 말씀해주셨다. 동기들끼리는 그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전에 어떤 훈련병이 자해를 기도한 적이 있어 그렇다느니, 실수로 호 안에 떨어진 수류탄을 누가 몸으로 덮어 희생했다느니 하며 온갖 괴담을 늘어놓았고, 괜스레 분위기를 긴장되게 했다.
육군훈련소에서는 어느 훈련장이든 가려면 걸어서 40분이 넘게 걸리는데, 완전군장을 한 채로 훈련장까지 걸어가는 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간신히 훈련장에 도착해 군장을 풀고 이동하는데, 앞에 자그마한 구덩이가 파여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해 발을 접질리고 말았다. 다행인지 그날 아침 평소에 있던 허리 통증으로 받아둔 진통제를 먹어서인지,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수류탄 투척 시험을 봐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때 내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전투부상자처치 훈련에서 겪었던 수모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건지, 그 전주에 사격 훈련을 꽤 괜찮게 마무리한 것으로부터의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잘하고 싶었다. 무척.
수류탄은 생각보다 무겁다. 그래서 수류탄 투척 시에는 오히려 힘을 빼고 가볍게 위로 던지는 것이 더 멀리 나간다. 게다가 시험 때에는 표적 앞쪽에 세워진 높은 철책을 넘겨야 했기 때문에, 이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던지려니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뿐 이었다. 그래서일까, 던지는 순간 손끝부터 어깨까지 온 팔에 힘이 들어갔고, 수류탄은 맹렬히 날아가다 철책에 부딪혀 떨어지고 말았다.
수류탄 투척 후에는 파편 튀는 것에 대비해 방탄모를 착용한 채로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래서 수류탄이 제대로 날아갔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때, 손을 떠난 수류탄이 철책에 부딪혀 ‘팅’ 하고 냈던 금속성 소리만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수류탄이 내 마음속 어딘가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속상했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산산이 조각나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날 복귀 간에 완전군장 달리기가 있었는데, 마치고 나니 접질렸던 부위가 텅텅 부어있었다. 약효가 떨어져서인지 통증도 무척 심했다. 저녁 식사를 대충 마치고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절뚝거리며 식당을 나오는데, 식당 출구에 있는 커다란 폐전구 위에 제비집이 있었다. 제비집 안에는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새끼 제비들이 네다섯 마리 있있고, 어미 제비는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새끼들 입안에 넣어주고 있었다. 그 광경이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제비집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