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uFrau's Frau-07
여성의 삶과 자유를 응원하기 위해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영감을 얻는 시간, 'FrauFrau's Frau'의 일곱 번째 주인공은 '철의 여인'으로 유명한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입니다. 그녀의 이름과 별칭인 '철의 여인'은 대부분 익히 들어보셨을 텐데요.
하지만 정작 대처 총리가 왜 '철의 여인'이라 불렸는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영국의 현대 정치사는 물론 전 세계 여류 정치인의 역사에서도 단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 마거릿 대처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녀는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 만큼이나 언제나 과감하고 단호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독단적인 정책 추진으로 결국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했는데요. 마거릿 대처는 1925년 영국 링컨셔주에서 태어나 지역의 명사이자 시장까지 지냈던 아버지에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 들어가 화학을 전공하고 동시에 경제학에 대한 큰 관심과 뜻을 품고, 졸업 후에는 독학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리고 1959년 보수당 공천으로 출마해 영국 하원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녀는 줄곧 당차고 강철같은 정책으로 민심을 사로잡으며 연금부, 에너지부, 교육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합니다. 1975년 영국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에 오르고, 이듬해 1월 당시 소련의 국방부 기관지에서는 철저한 반공주의를 추구했던 마거릿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고 칭하며 맹렬히 비난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비난의 목적으로 붙인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은 대처 자신도 마음에 들어 했으며, 이후 모든 미디어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그녀를 칭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간 대처는 1979년 수상 자리에 오릅니다. 총리 마거릿 대처의 가장 큰 업적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일명 '대처리즘'이라는 경제 정치 기조에 있습니다. 적극적인 민영화 정책과 사회복지 지출 삭감, 무능력자 및 부패 혐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해임과 파면 등 강력한 지도력을 앞세운 대처리즘 정책으로 그녀는 당시 불황에 빠진 영국 경제를 살렸고 무엇보다 1980년대 초 치솟던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1991년 보수당 당수 및 총리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무려 11년간 영국을 통치합니다.
대처는 정치 생활 말년인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와의 '포틀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과 협력해 냉전을 붕괴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경제정책은 물론 안보, 외교, 리더십 면에서도 성과를 낸 것이죠. 하지만 1980년대 말 불어닥친 경제 위기에 신자유주의 노선만을 고집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졌고, 떨어지는 경제지표와 함께 권위를 잃어가게 됩니다.
대처는 2013년 4월 향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민영화 남발, 아들 마크의 범죄행위, 독재자 옹호 등 비난을 받은 부분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현대 영국 정치와 전 세계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입지전적인 인물임에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여성임에도 정치적 리더십과 주체적인 삶의 태도로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억누르고 스스로 역사적 인물이 된 자유로운 여성이었습니다.
내용 원안 위키피디아, 연합뉴스
썸네일 Image Women in E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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