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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펜 설아 Oct 02. 2023

[몽마르트 동네 이야기] 개 천국

말 그대로 개(들의) 천국에서 보낸 오후

몽마르트 언덕에서 가장 높은 곳, Sacré-Coeur 대성당 앞쪽에 위치한 공원은 Nadar의 이름을 본떠 Square Nadar이라고 불린다.* 이 작은 공원의 특이점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강아지 공원이라는 것! 파리 시내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반려견 배변을 잘 치우지 않아서라고들 한다. 식당이나 빠에는 오히려 출입 가능한데 참...) 반려인들과 반려견들에게 참 귀한 장소이다. Sacré-Coeur을 보러 온 관광객들도, 로컬들도 사이좋게 모여 공원 밖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아예 공원 내 벤치에 앉아서 강아지 구경을 하곤 한다.


(*19세기에 다양한 창작활동을 했던 Nadar(Félix Tournachon의 필명)은 사진작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과 행적 중 가장 유명한 건 1858년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공기선에서 찍은 사진. 그래서일까,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원을 그의 필명으로 이름 지은 게?)


바깥에서 공원 안을 내려다본 시각
반려견들에게 특히 인기인 (?) 공원 내에서의 로맨틱한 뷰


이곳은 평일 저녁과 일요일 오후에는 말 그대로 강아지 천국이 된다. 많은 반려인들이 평일엔 출근시간 동안 하루 종일 반려견을 집에 남겨두어 미안한 맘에 퇴근 후 공원에 반려견과 놀러 오고, 주말 오후엔 느긋함을 만끽하며 반려견과 몇 시간씩도 보내고 가곤 한다. 덕분에 강아지가 없더라도 언제든 공원에 가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귀여운 강아지들이 살갑게 아는 척을 하곤 해서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공원은 꿈의 장소이다.




저번 주 일요일, 동네 친구와 만나 산책을 하다가 커피를 사서 강아지 공원에 가 벤치에 앉았다. 반려인들과 특히 반려견들로 바글바글한 공원. 우리 옆에 와 앉는 반려인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와 자유롭게 뛰고 서로 장난치며 노는 행복한 모습의 강아지들 덕분에 재미가 쏠쏠했다. 그날 가장 길게 얘기를 나누었던 반려인은 브라질에서 와 파리에 정착했다는 마리아. 카커 스파니얼 매력에 푹 빠졌다는 그녀는 카커 한 마리를 브라질에서, 또 다른 한 마리를 파리에서 입양해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뛰어노는 강아지들 중 가장 얌전히 반려인에게 딱 달라붙어 평정을 유지하던 (?) 두 마리였다. 가져왔던 커피를 다 마시고도 한참을 앉아 수다도 떨고 강아지들도 맘껏 예뻐해 주다 보니 세 시간이 금방 흘렀다.


마리아의 곁을 거의 떠나지 않던 그녀의 코카 스파니얼 두 마리. 그리고 함께 놀고 싶다고 찾아온 다른 코카 한 마리 (몇 번이나 반려인에게 끌려갔는지 모른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들은 참 다양하다. 막 예방접종을 마치고 처음으로 다른 강아지들과 사교연습을 하러 나와 머뭇거리거나 정신없이 까불대는 강아지들도, 나이를 지긋이 먹어 주인 옆에 가만히 앉아 다른 강아지들을 바라보는 강아지들도 있다. 또 번개 같은 속도로 공원을 가로지르며 노는 강아지들이 적어도 두 무리는 있고, 그중 몇이 다가와 아는 척이라도 하면 깽깽하고 온갖 엄살을 피우며 반려인에게 안겨 버리는 강아지들도 있다. 반려인들만 해도 그렇다. 알아서 놀라고 반려견을 풀어주고선 가져온 책을 가방에서 꺼내 조용히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아직 어리거나 유난히 작고 엄살 많은 반려견, 또는 유난히 까불까불한 반려견들을 틈틈이 교육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와 내 친구처럼 강아지가 없는데도 와서 강아지 구경에 신난 사람들도 있고. 그들과 교류하는 건 참 즐겁고 매번 새롭다. 나와 내 친구도 강아지를 키운 경험이 있기에 그들과 공감 포인트가 많지만, 그들이 서로의 가족이 되고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는 다들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나에겐 참 소중한 반려견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때 캐나다로 이민 가면서부터 강아지를 키우게 해 준다고 엄마 아빠의 약속을 실은 받아 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강아지를 집에 데려올 수 있었다. 작고 하얀 나만의 강아지, 피기. 내 껌딱지, 포켓몬, 우리 가족의 귀염둥이이자 마스코트 피기. 영리하기도 참 영리하고 그렇게 순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대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렇게 피기와 함께 자랐고, 졸업을 앞두고 넓은 세상을 좀 더 경험하고 정착하라는 아빠의 권유가 꺼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사실 피기였다. 안 그래도 너무 짧은 시간을 우리 곁에 머물렀다 가는 강아지들인데, 내가 없이도 흘러갈 피기의 시간이 아까웠고 아쉬웠기 때문에. 결국 운 좋게 프랑스 보르도 대학교에서 직장을 찾게 되어 독립하게 됐을 때, 최대 2 년만이라고 맘을 꼭 먹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결국 죽 정착하게 돼 버렸고, 여름, 겨울 방학을 이용해 매년 한 두 번 가서 한 달씩 보는 걸로는 내 미안한 마음을 달래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나의 강아지'라고만 생각했던 피기가 실은 '우리 집 강아지'였단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프랑스로 데려와 키울 수 있는 여력이 된다고 느꼈을 때쯤엔 피기는 노견이 되어 있었고, 그런 피기를 순전히 내 욕심에 푸르른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콘크리트 천지인 도시 내 아파트로 데려올 순 없었다.


피기가 저 멀리 소풍을 떠난 건 2 년 전, 2021년 여름이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캐나다 집에 1 년 반을 넘게 가지 못하고 있다가 캐나다 정부가 여행 제한을 완화하자마자 가서 본 피기 -- 갑자기 급속도로 진행된 노화로 많이 약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인 것에 반응하듯, 한 달 반을 생기를 되찾은 듯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우리 곁을 지킨 뒤, 나와 동생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일주일이 지나 엄마 아빠가 자리를 지켜주는 동안 갑작스레, 그럼에도 평온히 소풍을 떠났다. 피기 얘기를 하면 내가 못 해준 것, 또 내가 캐나다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면서 누릴 수 없는 가족과의 일상에 대한 애석함으로 맘이 무거워진다. 또 그만큼이나 순수하고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았음에 고마운 맘이 커서 금세 맘은 금세 복잡해진다.


피기를 보내고 한창 힘들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펫로스를 따르는 아픔과 그리움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는 못한다고 느껴서 유독 힘들었다. 극소수이지만, '그래도 강아지인데 금방 괜찮아질 거야'라던지, '네가 좀 유별나긴 하잖아'라며 잘 이해하지 못함을 투명하게 표현하던 이들, 또는 친구들이 날 위해 좋은 의도로 건네는 위로도 때때론 오히려 맘을 아프게 하곤 했던 게 기억에 자리해서, 2 년이 지난 지금도 몇몇을 제외하곤 피기에 대해서 깊은 얘기를 잘 하지 못한다.


피기가 소풍 가기 전, 피기가 보고 싶을 땐 Square Nadar에 와서 다른 강아지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코로나 사태 동안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할 땐 이웃들의 강아지들을 우리 집에서 돌봐주기도 했었 (학생들에게 인기 참 많았던 강아지들...). 그렇게 강아지를 맡아 며칠, 몇 주씩 돌봐주는 동안엔 피기를 데리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하며 대리만족을 하곤 했다. 하지만 피기가 곁을 떠나고선 강아지를 보는 것도 힘들어 공원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길가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들과 반려인들도 꽤 긴 시간 동안 내게 괴로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힘들어서 일기장에 맘을 토해내듯 뱉으며 그리움에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점점 강아지들을 예뻐하는 것도 조금씩 덜 거북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피기가 소풍을 간 후 강아지 공원에 2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 게 저번 일요일이었다. 적어도 몇 십 마리는 되어 보였던 강아지들. 예전에 자주 보곤 했던 강아지들이 생각나 잘 있으려나 하고 소식이 궁금해졌다 -- 건강하게 잘 있는지, 여전히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지, 아직도 공원에 자주 놀러 오는지. 일요일 오후라고 공원을 가득 채운 강아지들과 반려인들을 보며 맘이 아프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피기가, 우리가 겹쳐 보여 마음이 뭉클했다.


반려인들과 우리 사이에 자연스레 오고 가던 담소 중, 그렇게 강아지를 좋아하면서 강아지가 없냐고 의아해하는 반려인들에게 나도 강아지가 있었지만 하늘나라에 갔다고 괜찮은 척 답하면서도, 평소에 비해서 조금은 덜 울렁거린다고도 생각했다. 얘길 나눈 반려인 중 한 명은, 자기도 그런 아픔을 겪고서도 다시 마음을 열어 가족으로 맞은 반려견이 저-기 저 까불이라고 말해주었다 -- 그의 손가락 끝에 보이던, 정신없이 놀고 짖느라 바빠 보이는, 행복과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겨우 두 살 먹은 테리어 강아지. 웃음이 나왔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인데도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들




이번 글은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들과 반려인들 뿐 아니라 실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피기 생각이 자주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2 년 만에 처음으로 강아지 공원에 다시 발걸음 했다는 것, 또 행복한 반려견들과 반려인들의 모습을 보며 울거나 마음이 갑갑해지지 않고 덩달아 맘이 따듯해졌다는 것, 무엇보다 그들을 보며 이젠 피기가 우리 곁에 없음에 슬퍼하기 보다도 함께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사랑한 만큼 힘든 이별이기에 맘껏 힘들어하다가도 웃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 그런 날이었다.


따스하고 포근했던 일요일 오후. 유독 반짝이는 것 같았던 나른한 햇살 아래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던 사랑스러운 생명체들, 한참을 재밌게 놀고 반려인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그리고 새록새록 피어나던 피기와의 추억들. 꽤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날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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