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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펜 설아 Sep 11. 2023

[몽마르트 동네 이야기] 술 한잔 어때?

적당한 음주와 교류는 삶을 즐겁게 합니다 8-)

어서 오세요, 유세프의 Aux Trois에!


몽마르트 언덕엔 수많은 식당과 바가 있다. 그중에서도 손님 대부분이 관광객인 곳과 로컬들인 곳은 쉽게 분류되기도 한다. 우리 집 이웃인 bar, Aux Trois는 특히나 나와 남자친구, 찰리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이다. Aux Trois로 가려면 Place Saint-Pierre에서 Sacré-Coeur 대성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1/3 쯤 오르다 왼쪽으로 돌아가면 된다. 계단 끝엔 작은 보행자 전용 도로가 있고, 그 도로에 Aux Trois가 있다. 대성당 근처는 대부분이 관광객들로 붐비는데도 이곳은 꽤 한적한 편이다.



'Aux Trois'라는 이름을 직역하면 '세 개/명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바의 주인에 의하면 처음 바를 시작할 때 자기 자신을 포함해 세 명이서 사업을 추진했기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Aux Trois의 문은 오후 다섯 시부터 활짝 열린다. 동네 주민들이 일을 끝나고, 식사를 하고 심심해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또는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데 가볍게 술 한잔 하며 밖에서 하고 싶어서, 등 -- 그냥, 지나가다 틈틈이 들리는 곳. 항상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따듯한 불빛에 센스 있게 꾸며진 바이기에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의 주인인 유세프가 엄청난 인싸.


유세프는 모로코 2 세 이민자 출신으로 프랑스 북쪽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들렸던 동네가 몽마르트였고, 몽마르트의 작은 마을 같은 감성에 푹 빠져 Aux Trois를 열게 되었다고. 2 년째 자리한 이곳에서 유세프는 참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다. 언제든 만나면 환히 웃으며 인사해 주는 그 덕에 아무리 피곤한 퇴근길이라도 절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냐는 따듯한 인사에 좀 지쳤다고 투정 부리면 금세 술 한잔 들라며 맞이해 주는 다정한 유세프. 그런 유세프도 좋고 싫고 가 확실한데, 다른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친다면 바에서 가차 없이 내쫓는다. 덕분에 주정뱅이들이 없는 그의 바는 맘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성인전용 (?) 놀이터인 셈.


그의 바에서는 다양한 술을 마실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Spritz Saint Germain -- Savoie 지역에서 자란 엘더플라워 꽃으로 만든 리큐어,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이나 프로세코, 스파클링 미네랄워터 등이 들어간 칵테일 -- 인데 내가 프랑스에서 살며 마셔본 것 중 유세프가 해준 게 제일 맛있고 푸짐(?)하다. 유의할 점은 술을 얼마나 넣는지는 몰라도 한 잔만 마셔도 헤롱헤롱 해진다는 것 -- 엄마 아빠께서 6월에 오셨을 때 이 칵테일을 각자 한 잔씩 마셨다가 엄마와 나는 저녁 내내 헤롱헤롱해서 식사하고서야 깼다.


Spritz Saint Germain 준비해 주는 유세프


유세프의 여자친구 마리는 화가이다. 얼굴만큼이나 예쁜 목소리에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녀는 가끔 바로 칸바스를 가져와 작업한다. 유세프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 때때로 몽마르트 로컬 중 음악가들을 초대해 재즈 나잇이나 탱고 나잇을 주최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인지 바에서 마주치는 단골손님 중에선 예술가가 꽤 있다. 직업이 무엇이든, 관광객이든 로컬이든, 가볍게 잠시 머무르다 가는 이들도, 바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있는 이들도, 이곳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참 상냥하고 흥미롭기 그지없다. 워낙 주중에도 와인이나 맥주 한 잔 가볍게 하는 게 일상인 프랑스인들이라 (심지어는 일 하는 도중 점심시간에도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기도 한다) 바에 자주 온다고 해서 굳이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가볍게 한두 잔 들며 인사 나누는 겸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향한다.





유세프의 바에는 사람들 뿐이 아니라 복슬복슬한 털북숭이 손님들도 자주 들린다. 저번 글에서 소개한 고양이 툴루즈도, 몽마르트 동네의 다양한 강아지 손님들도 툭하면 들려서 오죽하면 강아지 과자를 따로 사놓았을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목줄을 하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고, 목줄을 하더라도 보행자 전용 도로에 잠시라도 뛰어놀라고 반려견들을 풀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목줄 풀린 강아지들은 신나서 유세프 바에 달려 들어가고, 유세프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주방으로 들어가 과자를 가져와 내어 주곤 한다. 신나서 과자를 받아먹고 염치 좋게 또 꼬리를 살랑이는 강아지들은 견주가 밖에서 불러도 눈길도 주지 않아 결국 견주에게 끌려가기도. 덕분에 Aux Trois에서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심심치 않다.




정이 많이 든 곳이지만 영원하지 않을 걸 알고 있다. 유세프는 틈틈이 우리에게 흘려주곤 한다, 프랑스를 떠날 것이라고.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백인 사회에서 아랍인들이 받는 차별에 지칠 대로 지쳐서 모로코로 꼭 돌아가겠다고. 그래서 모로코에 이미 집도 마련해 뒀단다. 2 년 즘 뒤면 바를 정리하고 귀국 아닌 귀국한다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그의 속사정에 마음이 아프다.


그는 내게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아랍인들이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되는 현실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경험하는 동양인을 향한 조롱 또 여자를 향한 캣콜링은 아무래도 아랍인 남성인 그에게는 낯선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디든지 멍청이들은 꼭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이 맞다. 이렇게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해서 우리에게 남는 건 무엇인지. 자기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프랑스를 떠날 거라는 얘기를 희망찬 눈으로 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행복을 응원해주고 싶다.


어차피 나와 찰리도 몇 년 후쯤엔 몽마르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참 많이 정든 동네이고 편하기 그지없지만 우린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아파트 생활을 떠나 아마도 조용한 시외 어딘가에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몽마르트 생활을 맘껏 즐기고 싶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몽마르트인(불어로는 Montmartrois.e라고 불러진다)들의 따스함을 만끽(?)하고 그들과 교류하고 싶다. 그러기엔 유세프의 바가 적격인 셈이다.




Aux Trois에 모이는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발걸음 한다. 그들의 마음의 무게는 처음 보더라도 오래 본 친구인 것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트는 다른 이들의 상냥함에 금세 가벼워진다. 어떤 피로함이나 고민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잠시 내려놓고 쉬었다 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고 가는 소소한 일상 얘기와 크고작은 좋은 소식, 그리고 고민거리에는 여럿에게 받을 수 있는 축하와 위로가 있다. 굳이 나의 고민을 나누지 않더라도 다른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소소한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새삼 정겹게 느껴지는 이곳. 이렇게 집 가까이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다.


어딘가 나른한 일요일 오후, 뭔가 심심한 맛이 없지 않아 있다. 5 시에 유세프네로 가서 인사나 하고 와야겠다.


어서 오세요, Aux Troix에!



예전에 프랑스에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적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여기 링크:

https://brunch.co.kr/@26memostoself/14


이번 한 주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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