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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Apr 03. 2024

의무적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의무적으로 부모님을 대했다. 이 정도 먹여주고 키워줬으니 내가 이 정도는 해드려야 한다. 부모니까 자식으로서 도리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 비록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상처도 많이 받고 자라온 나지만, 그래도 날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이니까 애를 써서라도 잘 해야 한다고. 그러다 최근 어떤 문제로 부모님과 기나긴 얘기를 하고 나서 해결되지 않은 불만과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하여 내 마음속에선 악마가 되어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왜 네가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돌보고 살펴야 해?'


맞다. 사실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없었으면서 왜 이제 나를 필요하다고 하는지. 울화가 치밀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울 때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어린 동생을 방에서 끌어안고 울었던 얘기를 가볍게 꺼냈을 때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농담이었다 사과하며 엄마를 달랬다. 사실 나는 서운함 정도로 작아진 내 슬픔과 화였는데, 아직도 나는 스스로 그 부분들을 전부라 생각하며 억지로 끌고 온 감정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파했던 사건들은 사실 30년 인생에 시간으로 따지면 1년이 채 안 될 시간들인데, 나는 그걸 30년이라는 시간의 전부로 부풀려왔고, 그래서 부모님이 주신 수많은 행복과 사랑을 스스로 무시해 온 것이다.




부모님은 후회 속에 살고, 나는 분노 속에 사는 것을 선택한 것. 내 상처에 내가 잠식되어 부모님이 내민 손을 뿌리치기만 할 뿐이었다. 연민은 감정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긴 하지만, 긴 시간을 가족과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부모님의 일생은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게. 


나는 나쁜 딸이다.


엄마 아빠의 찬란한 젊은 시절. 모두 다 포기하고 가정을 위하여 살아온 그 두 분을 버겁게만 생각한 나 자신이 두렵다. 나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시려 노력한 부모님에게 나는 20살 이후 1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감사한 척 살아온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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