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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Mar 08. 2024

나에게 하는 말.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마법의 주문.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마법의 주문.



나는 B의 상황에선 단단하고 영향받지 않지만 A라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취약하고, 화도 잘 나고, 스트레스 받는 반면에 상대방은 A가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반복해서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해도 타격을 입지 않지만 B라는 상황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A, B는 서로가 왜 각자 취약한지 이해되는 부분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모두 존재한다. '그게 왜 화가 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너는 왜 그래?'라는 말들은 가끔 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 타인을 맞춰서 검열하고 재단하면서 상대를 대하다 보면 꼭 스스로가 먼저 탈이 나게 되어있다. 이해가 가지 않으니 나만의 기준을 제시하고, 스트레스가 생기고, 마찰도 더욱 생기는 것이다. 예의 범주에 벗어나거나,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준다면 그건 이유 불문하고 바로 도망쳐야 하는 사람이지만 아주 사소한 가치관이나, 생각들은 어느 정도 '아 그렇구나~'하고 넘길 줄 알아야 스스로에게 제일 이롭고 타인과의 관계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기준에 완벽에 가깝게 해당하는 사람은 온 세상 우주를 다 뒤져봐도 없을 것이고 나조차도 그 기준이 완벽하지 않은데 타인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인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를 버릇처럼 되새기다 보면 결국 병들어가는 것은 나일뿐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갈 이해관계는 주저 말고 대화해 보아야 한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모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고,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과연 대화를 시도한 나의 탓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 손을 뻗었을 뿐인데 뿌리친 사람의 행동까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내가 지치지 않을 선에서 최선을 다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보이지 않을 땐 미련 없이 단호해져야 한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좋게 봐줄 사람은 좋게 봐주고, 나쁘게 보는 사람은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날 나쁘게 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도 같은 이치다. '얘는 이래서 나랑 안 맞아' '쟤는 저래서 나랑 안 맞아' 마치 채점하듯 사람에 대한 검열을 하다 보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틀리지 않다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해하면 제일 좋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고 하지 못해도 충분하다. 그냥 그대로를 그 사람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나도 가끔 너무 상대방에게 깊게 빠지게 될 때면 세 걸음 물러서서 방관자의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너무 끈끈하게 얽히게 되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고, 감정도 동요돼서 나까지 물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라는 말이 거창한 건 사실이다. 사랑까지 하지 않아도 그냥 머리를 비우고 인정하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나의 유일한 마법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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