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배려는 상대를 피곤하게 한다.
배려[配慮] :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앞서 적어내려간 글에서도 자주 언급했지만 나는 '프로 예민러' 그 자체다. 조용한 곳에서의 작은 소리와, 어두운 곳에서의 밝은 빛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과 스치기만 해도 몹시 불쾌하다.(실제로 예민한 기질이 타고났다고 전문의에게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내가 이렇게 외적인 요소들과 사람들에게 불편을 쉽게 느끼는 성향이라서 그런지 반대로 나 또한 남들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끼치지 않고 배려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오랫동안 생각나고, 도움을 직접적으로 요청하면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뒷사람을 위해 잡아주고, 사무실 내 탕비실 휴지통이 꽉 차 보이면 좀 더 눌러 놓는다든지 등등의 어쩌면 아주 사소한 행동들 까지.
하지만 이런 사소한 배려 이외에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배려 받을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얼마 전,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왔던 상대방이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고, 말수가 적어지는 모습에서 나는 '아 이 사람 피곤하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한두 차례 되물어 본 적이 있었다. 혹시 피곤하냐고.
사실 계속 신경 쓴 이유는 다양한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상대방이 먼저 '나 피곤해'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알아주는 게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나도 이런 내 감정이 왜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피곤하다고 하면 왠지 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달까.(내가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든 느낌이라서 '혹시 이제 혼자 있고 싶나'라는 생각이 들어 역으로 서운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가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닦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때 당시엔 왜 자꾸 물어보냐는 상대에게 매우 속상한 감정만 느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에서 내가 반대로 겪고 있는 일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을 애지중지 챙기는 매우 가정적인 분이신데, 하나의 일화를 예로 들자면, 나는 입시의 영향으로 밥을 급하게 많이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습관이 아직도 신경이 많이 쓰이시는지 내가 밥을 얼마나 먹는지 매번 확인하고 "너무 많지 않냐~ 다 먹을 수 있겠냐"를 최소 두 번씩은 물어보신다.
나를 걱정해서 하시는 말인 걸 알기 때문에 보통은 별 대꾸를 안 하지만 아주 가끔은 짜증이 나는 건 사실이다. 걱정은 너무 감사한데 이제는 내가 어련히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매번 그러시니 내 의지와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이 기억을 통해 내가 느낀 감정을 상대도 느꼈다고 생각하니 바로 역지사지가 되면서 깨달았다. 결국에 내가 한 배려는 나 편하려고 하는 일방적인 배려였던 것이다. 거절당하는 기분 느끼기 싫어서,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등등 복합적인 이유로 했던 배려였지만 말이다.
내가 답답해서 섣불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많지만 가끔은 그게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나의 이런 점을 알아주고 나도 노력하며 맞춰나가는 게 베스트지만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30년을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모녀관계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니, 정말 배려를 포함한 감정 교류는 어렵고도 험난한 일인 것이다.
배려를 포함해 많은 질문으로 가득 찬 대화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