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은 안되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재즈 좋아하세요?

분위기 잡고 싶어 간 재즈바, 30분 지나니까 졸린 이유

by 도란기록

저는 재즈를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때 빌 에반스의 But beautiful(유명한 스탠다드죠..) 을 처음 듣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에 재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재즈가 좋아서 재즈피아노도 약 4년정도 배웠습니다.

재즈를 좋아하면서 듣다가 직접 배워 보면서 느끼는 부분들이 있어 글을 써 봅니다.


요즘은 재즈바 가는 것도 너무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처음 재즈바에 가서 칵테일 하나 시켜놓고 조명 어스름한 재즈바에 앉아 있으면, 왠지 나도 엄청난 감성인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연인과 같이 가서 음악도 듣고 분위기도 잡고 하면, 뭔가 새로운 느낌도 나고 기분도 좋지요.


그런데, 30분 지나니까 눈꺼풀이 무너집니다.

같이간 사람도 무대 보면서 머리는 끄덕이고 있는데 웬지 눈에 영혼이 없어보여요.

그렇다고 중간에 나가자고 하자니 나만 좀 못즐기는 느낌이 들어 애써 고개로 리듬을 타봅니다.


세션이 돌아가면서 솔로를 치는데, 처음에는 신나고 가슴이 뜁니다.
"오, 즉흥이다, 이것이 재즈. 자유다. I'm free"

3분, 5분...악기들끼리 뭘 주고 받는 것 같은데 슬슬 지루하기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모두 박수치고 환호성 지를 때 나도 한번 질러봅니다

"호우!!(살짝 못 신난거 티남)"

10분.. 이놈의 솔로는 끝날 기미가 안보입니다.

"언제 끝나지...2차로 치맥이나 조지러 가고싶네"

20250428_004613.jpg 심슨 - 재즈 연주가 시작되려 하자 비가 내립니다 (미국도 재즈가 지루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왜일까요? 왜 재즈 라이브는 졸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즈 라이브에서는 솔로가 필수고, 솔로는 원래 듣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재즈는 비밥 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즉흥성이 고도화됐습니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같은 사람들이 코드 위에서 자유자재로 솔로를 펼쳤죠.
문제는 그 자유가, 아예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길을 잃은’ 자유였다는 겁니다.


솔로가 진행되면 코드를 뼈대 삼아서 멜로디를 새로 짜는데, 그 뼈대의 구조나 전개를 알고 들어야 좋습니다 (대표적인 게 투파이브원(Ⅱ-Ⅴ-Ⅰ) 진행입니다. 예를 들면, Dm7 → G7 → Cm7 이런 식으로 흐릅니다 -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음이 왔다 갔다 한다"로 느껴집니다.)


즉흥 연주는 이 코드 체인지를 따라가면서, 그 위에 라인을 만들고, 다시 변형하고, 꼬아서 엮는 과정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들리는 멜로디가 단순한 노래선이 아니라 막 휘갈겨진 선 같아집니다.


이걸 안 듣고 그냥 분위기로만 듣기 시작하면, 5분이면 잘 버틴것 같기도 합니다(보통 우리가 듣는 가요가 5분 미만이니까요)


게다가 재즈에서 솔로부분은 "관중들이 잘 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주자가 지금 생각하고, 고민하고, 터뜨리는" 걸 곁에서 같이 듣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엿듣을 준비도 안 되어 있으면서, "오 싯.... 즉흥!" 하면서 분위기만 소비하려 한다는 겁니다(제 경험입니다.)


이런 자세로 듣다 보면 30분씩 버티는게 신기할 지경입니다.


음악을 들으러 간 게 아니라, 분위기를 소비하러 갔기 때문입니다.

그냥 '멋있다'는 기분과 분위기만으로 30분을 버티려고 하니, 내 뇌에서 "그래..재즈를 즐기는 너 충분히 멋있어. 이제 그만해.. 좀 쉬어" 하면서 졸음신호를 보낼 수 밖에 없는거죠.


근데 그걸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들으면, 정말 멋집니다.

솔로에서의 큰 뼈대를 잡고, 큰 구조 속에서 그 위에 연주자가 어떻게 자유롭게 올라타는지 느껴보세요.

베이스가 코드를 딱 잡아줄 때, 드럼이 심벌로 공간을 쓱 긁을 때, 그 사이로 피아노가 살짝 치고 나오면서 이야기를 할 때 —

그걸 느끼기 시작하면, 뇌님께서 졸음신호를 보낼 틈이 없습니다.

졸린 대신,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재즈가 너무 좋아집니다.


물론 이렇게 쓰는 저도 모든 구조를 전공자처럼 다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씩 알아가면서 느끼는 그 과정. 이해하고, 따라가고, 울림을 찾는 그 순간...

글을 쓰면서도 확실히 재즈가 더 좋아지네요. 이번 주에는 혼자서라도 연주가 있는 재즈바에 들러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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