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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 -4

오늘도 어제보다 더 손님과 이별하는 중입니다.

[키오스크가 예쁜 삿포로, 치토세 공항 한 컷]

항공사에 다니면서 한 번도 승무원이냐는 질문을 들은 적 없는 외모의 소유자인 나는(..) 지금은 본사에서 공항 자동화 관련 업무을 한다.


새로운 공항에 취항하기 위해 국토부 승인을 받는다던가, 비행기 스케줄을 짠다던가, 엔진이나 바퀴 등을 구매하는 등 아주 항공사스러운 업무와 다르게, 요즘 모든 기업의 대세인 무인화, 셀프 수속, 키오스크 확대 뭐 그런 평범한 거다.


사실 유럽 공항 쪽은 이미 근 10년 전부터 셀프 수속이라는 영역에 주목하여 기술을 개발해 왔던 것에 비하면 한국 공항들은 상당히 뒤처진 편이라고 생각한다. 8년 전, 텅 빈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서 고요히 키오스크로 수속하는 외국인들을 본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항공사 직원이 거의 없었다. 키오스크로 뽑은 탑승권이 갱지 수준이라, 아니..이 돈을 내고 손님이 이 정도 퀄리티의 탑승권을 받아야 하나..? 라고 느껴질 정도로 형편없던. 스스로 어리버리 가방에 bagtag을 붙이며 이게 맞나..? 힐끔힐끔 다른 승객을 훔쳐보던 내가 떠오른다.


아마도 "마~내가 누군지 아나? 느그 서장하고 내가! 어? 술도 마시고 어?"라고 외치는 DNA가 내재된 한국인의 특성에 기인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서양보다는 좀 더 집단주의적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반영된..


공항 카운터 근무시절 실제로 아주 많이 들어본 말이기도 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처음 뵈었는데도 본인이 누구인지 아냐고 물으시는 수많은 승객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불만손님과도 꽤나 친해져서 역으로 칭송받은 적도 상당하다. 하이간, 그랬던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요약하자면, 승객이 직원을 만나지 않고 수속부터 탑승까지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미 지금의 공항들은 점점 기계에 점령당하고 있다. 모바일 수속, 키오스크, 안면/장정맥 인식, 셀프백드롭 등등. 그리고 이것들은 언젠가는 공항을 완전히 점령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을 들은 내 친구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걸 못하게 하는 걸 니 손으로 만드는 거냐? 변태냐?" 하였다. 변태는 맞지만.. 핵심을 찔렸다.


코로나 이후로 사회 다방면에서 비대면 서비스의 경험이 많아진 승객들을 (당장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사려해도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하지 않은가!) 만족시키기 위한 항공사들의 노력들이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승객 만나기를 '더' 좋아하는 내가, 어떻게 하면 직원이 승객을 '' 만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게 말이다.


손님들의 DNA도 바뀌고 있을 것이다. "마! 내가 누군지 아나!"에서, "내가 누군지 너는 알 필요 없어"로. 비록 손님을 만나진 못하지만, 변해버린 손님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나름 보람 있다.


하지만 가끔은 난 그립다.

낭만이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북적거리던 공항,

가족 첫 해외여행에 한껏 들뜬 아이의 그 표정,

즐거운 여행되세요라고 한마디 건네던 내 목소리,

그리고 할머니 손님이 고생한다고 손에 쥐어주시던 따뜻한 커피의 온기 따위의 것들이.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더 손님과 이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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