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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로 가는 가장 먼 길 -1

탑승도 결심이 필요하답니다.

"이영숙 님!!! 안 계시면 넘어갑니다? 이영숙 님!!!"

"아 여기 있어요!!! 갑니다 가요!!!!!!"


아, 여기는 대체 어디인가. 고등어 낙찰하는 어시장 매장인지, 인천공항인지 정신이 아득하다.


때는 바야흐로 연휴를 앞둔 어느 밤 9시 반, 출발 1시간을 앞둔 터키항공 카운터였다. 딸내미와 2박 4일 짧은 이스탄불 여행을 위해 제휴항공사인 터키항공을 탈 계획이었다. 분명 수십 자리가 남는다는 첩보(?)를 입수한 나는 무조건 탈 것으로 안심했다가, 만석이라는 직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타 항공사라 정확한 잔여좌석 상태를 알지 못한다)


"지금 탑승권 못 드려요. 기다리세요"

"어.. 오늘 자리가 많이 빈다고 알고 있는데요.."

"직원 대기가 그만큼 많아요. 손님 다 나오시면 직원들은 그 뒤부터 선착순으로 드릴 거예요"


아뿔싸, 그래, 비행기에 손님만 타는 게 아니었지. 동서양의 문물이 모인다는 터키의 명성답게, 터키항공 또한 , 각종 제휴항공사의 직원들이 방방곡곡에서 모여 카운터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직원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어? 했는데..


'지저스.. 이거 다 직원이야???? 아놔'

이 뒤로도 수십명 몰려있던 치열한 대기의 현장..ㄷㄷ

어쩐지 늦은 밤에 오픈한 카운터는 없는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했더니 죄다 터키항공 대기 직원들이었다. 설상가상, 자리가 여유 있다고 알고 여유를 부린 탓에 거의 명단 마지막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간절한 눈빛의 수십 명 직원 손님들 앞에서 출발 1시간 전, 라스트 쇼가 시작되었다.


"자, 지금부터 대기손님 호명합니다. 김철수 님!! "

" 네네 갑니다!!!"

" 이영희 님!!! 없으면 넘어갑니다!!!!!"

"아 저희 여기 있어요!!!"

"빨리 오세요 시간 없어요!!"


출발 50분 전, 하나 둘 탑승권을 받아 사라지는 직원들을 보며, 난 잘릴 것을 예감했다. 프로 대기러(er)답게 호텔예약도 로밍도 뭣도 안 했던 나는 약간은 가벼운 맘으로 집 가는 리무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왜 호텔을 안 했는지는 [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 8] 참조^^;;)


"엄마 우리 오늘 터키 못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딸내미가 손을 그러쥐며 묻는다. 오늘 하루 종일 터키 관련 책을 열심히 읽은 딸내미에게 어찌말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이 땡땡 님!!!!!"

아싸! 내 이름이 호명됐다. 후다닥 달려가서 아이와 함께이니 나란한 자리를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들려오는 청천벽력 한마디..


"나란한 자리 없어요. 중간에 끼인 자리밖에 없어요. 앞뒤로 앉아가세요"

"네????? 얘는 7살인데요...??"

"이것도 아이 있어서 킵(keep)한 거 드리는 거예요. 빨리 뛰세요 40분 남았어요!!!!"


얼떨결에 탑승권을 쥐어 받은 나는 일단 아이손을 잡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는데, 대기할 때도 나지 않던 식은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아.. 얘를 데리고.. 떨어져서 간다고..? 심지어 중간에 끼인 좌석( ABC가 있으면 10B 11B로 받은 셈)이라니.. 게다가 밤비행기.. 어쩌면 좋지ㅠ'


아이를 데리고 밤비행을 타본 부모들은 다 알 것이다. 아이가 졸리면 얼마나 온몸을 비꼬며 짜증을 내는지, 비좁은 좌석에서 몸을 비틀며 자는지, 그래서 결국 부모의 자리까지 내어주고 부모는 비좁게 앉아가곤 하는지를 말이다.  내 딸이 졸림에 몸부림치다 A나 C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보통은 양해를 구해 자리를 바꾸곤 하지만, 우리 둘의 자리는 중간 끼인 자리.. 아무도 창가나 복도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비행이 두려워진 순간이었다.


이렇게 먼 거리를 떨어져 가다니, 절망그자체

터키항공은 일찍 문을 닫고 출발하기로 유명하다. 복잡한 머리와 다르게 다리는 뛰고 있었다. 절망적인 마음, 그리고 거의 불이 꺼진 면점 사이를 우다다다 달리는 수십 명의 승객들 사이에서 마치 난 헐리우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go냐 stop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문득 딸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 속도 모르고 비행기를 타게 됐다는 기쁨에 그저 신나서 방방 뛰는 저 7살을 보니 결정이 섰다.


'그래, 진상부리면 서서 안고라도 간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미 호주행 때 둘째 놈을 7시간 정도 서서 안고 간 경험이 있던 나는, 내 몸이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마침내 "탑승할 결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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