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3

친구와 절교하는 신박한 방법

[베트남이 주제니까, 베트남 사진 한장]






최근 한 친구와 절교직전에 이르렀던 적이 있다. 그 아찔했던 순간을 남겨보고자 한다. (그 친구를 A라 칭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둘째 출산 이후 나만 당할 수 없다는 마음 아주 약간(9할..?) + 둘째가 너무너무 귀여워서 주변 엄마들한테 한창 둘째 출산을 설파한 시절이 있었다.(나라에서 상 줘야 함..) 내 친구 A는 나의 꾐에 홀랑 넘어가 둘째를 가졌고, 배가 남산만큼 부르기 전 베트남 태교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괜스레 신이 난 나는, 그간 절대 하지 않던 실수를 하나 저지르게 된다. 바로, "확답을 주었다"는 것이다.


나름 프로 공항러로써, 많은 지인들로부터 해외여행 관련 다양한 질문을 받는데 (ex '나 편도티켓만 끊었는데 영국 입국 가능?'), 최선을 다해 답해주지만, 마무리는 늘 '응~(니도) 알아봐'였다.


다년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일종의 방어기제인데, 타 항공사의 규정, 혹은 온갖 국가의 입국규정을 항공사 직원들이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시스템이 거르고 알려줌) 원칙적으로 승객은 자신의 입국 및 비행기 탑승조건을 스스로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 해서 항공사가 무조건 손 놓고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만일 우리 승객의 최종 목적지의 입국자격이 불분명하다면..? 항공사는 온갖 난리부르스를 쳐서라도 비행기 뜨기 전에 ' 이 사람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가능한 모든 사실을 확인한다. 그 나라 법무부에 전화를 때리던, 비자사이트를 뒤지던 말이다. 일전에 한 승객의 여권이 아주 살짝 찢어졌었는데 (중국행이었음), 승객은 문제없다고 태워달라지, 중국 공항 공단은 안 된다고 하지.. 정말 출발 30분 전까지도 승객과 공단 사이에 껴서 미쳐버릴 뻔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쨌든 항공사 또한 승객의 성공적인 입국을 위해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검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하게 입국이 거절되거나, 환승지에서 두 번째 항공사의 탑승이 거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랬다. 그때부턴 승객과 항공사의 지리~한 진실 공방이다. 누가 직무를 유기하였는지, 어느 단계에서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었는지. 어쨌든 승객이 해피해야 항공사도 해피므로 비행기 출발 직전까지 난리부르스를 치는 거 아니겠는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저희도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지만, 손님도 알아보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어쩌다 이 말이 나왔지.. 아, 절교. 절교 얘기를 하다 삼천포로 빠졌다. A가 베트남으로 떠나는 날 밤 11시, 비몽사몽 한 상태로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내 친구 놈들은 죄다 야밤에 전화하고 난리ㅠ)


"야.. 나 비행기 못 탄다; 29주라 안된대.."

"뭐?!?!!!!!!!"


불과 며칠 전 그녀가 우스갯소리로 "야 나 너무 뚱뚱해서 못 타는 거 아냐?" 하는 말에 내가 "야 32주까지는 문제없어 인마 ㅋㅋ"라고 넘겼던 그 짧은 대화가 뇌리를 스치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의 항공사는 외항사 V 항공사. 27주부터 의사소견서가 필요한 항공사였음을 전혀 몰랐다.(국내 모든 항공사는 32주 미만까지 큰 제약 없음) 심지어 나도 30주에 국내항공사를 타고 태교여행을 다녀왔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게 화근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항공사는 임산부를 비롯, 노인에 대한 탑승규정도 상당히 빡빡한 항공사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29주의 몸을 이끌고 야밤에 집으로 돌아갔다.. 하아.. 그녀의 첫째와 남편만 베트남으로 떠났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위장이 뒤틀려 온다. 깊고도 심오한 항공사의 세계 앞에서 고작 10년 차인 나 따윈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다행히 천사 같은 그녀는 아직도 나와 친구를 해주고 있다.


친구야! 절교 안 해줘서 고맙다!

니 아들하고 내 딸 결혼하면, 내가 니 아들 비행기 많이 태워줄게...(그때까지 안 잘리면..)

작가의 이전글 시드니로 가는 가장 먼 길-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