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고모, 옥주와 동주 두 남매의 여름밤
옥주와 동주 그리고 아빠는 반지하에서 다마스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향한다. 방학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기로 한 것이다.
남매 중 누나인 옥주, 그녀는 이 이사가 할아버지께 허락 맡은 사안인지 아빠께 자꾸 되묻는다. 그녀는 2층의 방 한편에 모기장을 쳐 자신의 영역을 설정한다. 동생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아빠와 고모가 할아버지의 영역에 침범하려는 것에 반발한다. 옥주는 저 자신의 영역처럼 남의 영역도 소중히 여기는, 서로의 경계에 대해 민감히 반응하는 사춘기 소녀이다.
영화는 사춘기 소녀가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바라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현실적인 어른들은 할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옥주는 할아버지의 현재를 어색하게도 사랑한다. 미래를 굳이 따져보지 않는 어린아이적인 시선과, 사람 사이의 경계선을 구축하는 어른. 그 사이에서 옥주는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옥주의 성격은 할아버지의 생신 때 잘 드러난다. "돈은 쓰실 때도 없을 거고..."라며 생신선물을 고민하며 우선 미래를 생각하는 어른들은 오늘 사라질 케이크와 잘 익은 수박 같은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나 옥주가 준비한 것은 모자이다. 막말로 오늘내일하는 할아버지께 내일도, 어쩌면 5년 뒤에도 쓸 수 있을 모자를 선물한다.
현실적인 어른들은 할아버지께 아픈 기색이 보이자. 요양원을 알아보고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 한다. 어른들은 일 나가고 아이들이 개학하면 할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분명 현실적인 대안인 것이다.
그러나 옥주는 이에 격분한다. 할아버지의 집에 얹혀사는 입장인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죽음에 덤으로 딸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직 소녀만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니 현실적이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미래만 보고 현실을 덤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옥주가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잠 못 이룬 밤. 1층으로 내려오니 노란 등의 불빛만 옅게 깔려있고 책상 위엔 병맥 하나 그 앞으로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장현의 '미련' 그 행복한 표정에 차마 음악을 꺼달라고도 못하겠는 옥주는 계단에 앉아 내면의 갈등을 겪어야 했다. 할아버지의 그리운 과거를. 옥주는 잠을 줄이면서까지 존중했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와 공존한다. 동시존재는 아니나 현재를 과거 없이 얘기할 수는 없다. 24년 3월 13일 오후 6시는 누군가에겐 약 183,960시간이고 누군가에겐 약 446,760시간이다. 쌓아온 시간 없이는 현재도 없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향수鄕愁는 소중한 감정이고 그리움은 우릴 이루는 구성요소이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의 과거를 존중하는 옥주의 태도는 현재에 대한 그녀의 어색한 사랑이고,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는 건 현재를 사랑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소중하다. 과거를 추억하는 여름밤. 추억은 우리에게 꿈같은 형식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수를 꽂은 부끄러운 기억도, 그 시절의 잠 못 이룬 치정에 대한 고민도, 상실도, 행복도. 다음날 아침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의 따스함을 증폭시킨다. 그러니 모조리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