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고도. 목을 맬까 하지만 줄이 없어 그건 다음으로 미루는 기다리는 자들의 이야기.
짝사랑하는 야마가의 빈 집에 들어가 그의 징표를 챙기고, 자신의 징표를 놓고 나오는 여고생의 이야기. 빈집에는 들어가나 그곳에서 자위만은 하지 않던 그녀가 결국 자위를 하던 날. 하필 그날. 집으로 들어온 강도가 강간하려 하자 저항하다 살인해 버리는 이야기. 그런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삶은 다시 흘러가니 오로지 변화한 것은 야마가 집 앞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는 것뿐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메라를 보며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이야기.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위 이야기의 소녀는 누구일까.
자신이 쓴 드라마에 출연한 남자배우들과 혼외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진 오토가 남편에게 품고 살아왔던 감정일까. 말하고 싶던 욕망일까. '내가 관계를 가졌어' '내가 섹스를 했어'
오토와 혼외관계를 가진 다카즈키가 차의 뒷좌석에서 가후쿠에게 그 관계를 고백하던 때, 그때 다카즈키는 소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꼈을까.
산사태로 집이 무너졌을 때 집에서 홀로 빠져나왔고 그때 엄마를 구하러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자신이 엄마를 죽였다고 자책하는 미사키의 이야기일까.
오토의 외도를 알면서도 못 본 척하고, 그런 아내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방치하다 결국 그녀를 잃고 자신이 죽였다고 자책하는 가후쿠의 이야기일까.
어떤 사연이든, 경우에 따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준다. 그러니 오토, 다카즈키, 미사키, 가후쿠의 이야기도 소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난 소녀의 이야기가 영화의 비유라고 생각했을 때. 소녀의 이야기는 오토와 가후쿠의 관계를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다카즈키가 경찰에게 연행되며 주연 배우가 가후쿠 자신으로 교체된 그가 연출하던 연극처럼, 오토가 만든 이야기의 주연인 소녀도 교체된 것이다.
소녀가 전생을 떠올리고 야마가의 집에서 자위를 한 날. 업보의 고리를 벗어나던 그날. 그 소녀는 강도를 죽이며 오토에서 가후쿠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영화에서는 프롤로그의 끝, 즉 오토의 죽음까지만 그 소녀는 오토였던 것이다. 프롤로그 이후부터 소녀는 가후쿠가 된다.
가후쿠는 오토가 죽었음에도 일을 계속해야 했고, 아내와 외도한 남자 다카즈키는 운명적으로 계속 얽힌다. 세상에는 변한 게 없어 보이며 여전히 가혹하다.
그러다가 차 안에서 다카즈키와의 대화 이후, 미사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죽은 이후 유일하게 변화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야마가의 집 앞에 새로 설치된 cctv처럼. 그가 자신의 마음을 엿보게 되었을 때,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하며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지속돼야 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그는 cctv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죽였다'라고.
또 가후쿠의 고백은 연극에서 유나의 수화를 통해 들려오는데, 그녀가 백허그한 상태로 하는 수화는 삶 속에서 고통을 벗어날 방법은 없으며, 이 고통은 긴긴밤을 견뎌도 여전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버티고 버티다가 죽게 되면 하느님께 그 고통을 털어놓고 편히 쉬자고 말한다. 그 둘의 연기는 마법의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관객은 박수로 호응한다.
영화에는 말을 할 수 없는 아내의 언어를 알고 싶어서 수화를 공부한 남자 윤수가 있다. 윤수는 마치 영화에서 제시하는 롤모델 같다. 소통의 시작은 그 마음에서 오는 건 아닐까?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수화로 진행되는 대본 리딩처럼. 그럼에도 마음과 감정의 공유만으로 연극을 완성해 내는 그들 배우들의 소통처럼.
말을 할 수 있는 아내를 두고,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빙빙 돌아 집에 들어가던 남자 가후쿠는 미사키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는 법을 배운 것이다.
가후쿠가 차 안에서 미사키의 옆자리에 앉기 시작한 순간부터 둘 사이에 평등한 대화가 가능해졌고, 죽은 자를 평생 그리워해야만 하는 자신과 미사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이 죽게 되는 날 아내를 만나 쏟아낼 분노와 미안함을 평생 모으며 묵묵히 살아가기로 다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