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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마음, 판심.

“판사님, 정말 이건 내 말이 맞지 않아요?”


판사는 재판보직과 비재판보직을 맡을 수 있다.

    재판보직은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문을 쓰는 보직이고, 비재판보직은 사법연수원 교수, 사법정책연구원, 헌법재판소 등에서 1~2년 정도 잠깐 근무하면서 송무 외의 일을 맡아하며 구체적 사건을 처리하지는 않는다. 판사에 따라 재판업무, 특히 판결문 쓰는 것을 힘들어하는 판사님이 생각보다 많다. 원고와 피고의 사실관계 주장이 다를 경우 사실관계 확정에 자신이 없어 갈팡질팡 힘들어하는 판사님도 있고, 증거가치 판단에서 어떤 증거가 우위에 있는지 자신이 없어 갈팡질팡 결정 내리기를 힘들어하는 판사님도 있다.


  나는 재판보직이 잘 맞는, 판사인 것 같다.


    판결을 쓰기 전에는 기록은 여러 번, 증거도 꼼꼼히 보고, 고민을 많이 하지만,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면 거침없이 큰 틀을 따라 판결문을 한 번에 끝까지 써 내려가는 편이다.


    판사는 민사합의나 행정합의의 경우 매주 4건, 민사항소의 경우 매주 6건, 형사합의의 경우 매주 3~4건, 형사항소의 경우 평균 매주 15건(구속 사건이 몰려 일이 많을 땐 한 주에 20건이 넘게 썼던 적도 있었다, 재판 일주일에 2번 들어가고, 나머지 3일 동안 반나절 정도는 다음 주 사건 합의 준비 및 재판부합의를 하면 2.5일에 20건이 넘는 사건을 쓰게 되는 것인데 대략 하루 7~8건을 연속해서 쓰면, 나중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정말 힘들었었다. 합의나 재개신청 등으로 연기돼서 실제 선고 건수는 줄어들기도 했지만 정말 힘들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는) 정도의 사건을 검토하고, 판결문을 쓰게 된다. 


판사 재직 시절 옆 판사님이 찍어주신 사진-

    나의 경우 행정합의, 민사항소, 형사항소, 민사합의, 신청합의, 신청단독, 민사항고, 과태료재판 등을 두루 거쳤는데 형사항소 2년 동안에만 매주 평균 15건의 판결문만 쓴다고 해도, 한 달 4주 기준 60건, 1년 12달 720건, 2년 1440건 정도의 판결문을 쓰게 되는 건데(피고인이 여러 명이거나 병합사건, 죄명이 너무 많을 때는 사실 그만큼 검토사건수가 늘어나는 것인데 1 피고인 1 죄명 기준으로 그렇다) 형사는 휴정기 때도 2주를 못 쉬고 1주를 쉬는 것, 추석, 설 연휴 등을 감안해도  주심으로서 검토하고 썼던 판결문만 1,000건이 넘게 되는 것. 더구나 법정에서 진행만 하고 판결문을 쓰지 못하고 속행되어 다음 재판부가 갱신하는 사건도 있고, 법정에서 진행된 3인 재판부 사건을 모두 합하면 형사사건만 2,000건이 훌쩍 넘는다. 그동안 행정, 민사, 형사, 신청사건 등 처리하고 직접 썼던 결정문이나 판결문은 대략 5,000건은 훌쩍 넘길 것 같다.  

   


     

    판사인 친구 중에는 이런 엄청난 업무량 때문에 재판보직을 힘들어하고, 비재판보직을 맡으려 애쓰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가 한 번은 어떤 마음으로 판결을 하냐고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순간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일단 나는 이 일이 너무 좋아.


당사자들은 판사에게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더라고. 예를 들어, 

"판사님 봐주세요~ 딱 이 증거 하나면 정말 내 말이 맞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당사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법정에서도 찬찬히 들어주고, 기록에서도 찬찬히 들어주고 싶어. 이해하려 애쓰며 열심히 들어주고 싶어. 판결문에도,

“판사님, 정말 이건 내 말이 맞지 않아요?”라고 당사자가 물어보고 싶은 말에 대해서

“그건 이런 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이것도 우리 한 번 봐 볼까요? 이런 것들 전부 통틀어 보면 또 이렇게 보이기도 하지요?”라고 성실하게 "대답"해주는 판결을 쓰려고 정말 노력해.


그리고 양 당사자 모두 내 판결문을 받아보고, 결론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마음 다치지 않게 쓰려고. 당사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어루만져주면서도 결론은 내주는, 더 마음 상하지 말고. 이제 일상으로 잘 돌아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판결문을 써 왔어.


유무죄든 양형이든 너무 지금의 법원분위기, 사회분위기 내에서만 쓰는 것은 아닌지. 10년 후에 내가 내 판결문을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을지 항상 한 발짝 떨어져서 판결문을 보려고 노력하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피고인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현재의 상황, 내가 저 상황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항상 생각해 보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법정에 재정하지 않았더라도, 법정 방청석 맨 끝에 항상 앉아서 내 재판과 판결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것이 법복을 입은 판사의 마음.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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