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시간
어릴 적부터 나는 집에서 먹는 흰색 음식을 좋아했다.
엄마는 이를 기억하며 항상 물보다는 우유를, 밥보다는 식빵을 자주 먹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흰색 음식'이 주는 편안함을느꼈던 것 같다.
엄마는 이모와 함께 순두부 찌갯집을 운영하신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는 얼큰하고 빨간 찌개 속 새하얀 순두부가 밥과 함께 나오는 것이
가장 든든하고 행복한 한 끼였다.
무엇보다 퇴근 후에 엄마가 차려주는 한 상이 내 마음속에서 가장 큰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엄마와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가게 문을 일찍 닫는 날이면 엄마는 나에게 연락하신다.
간단한 점심을 함께 먹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다.
이미 30년을 살아온 인천의 동네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자주 가는 세탁소와 빵집, 떡집은 그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엄마를 따라다니면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 옆에서 올려다보던 엄마를
지금은 내려다보면, 엄마의 머리 위에 새하얀 눈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떡집에 가면 항상 가래떡을 사서 온다.
항상 현금으로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럴 적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항상 아침 일찍 떡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와 구워서,
엄마랑 이모, 삼촌 자는 머리맡에 두면 그 냄새에 깨서 눈도 안 뜨고 먹곤 했지."
올해 초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 엄마에게는 아버지였던 존재가
요새 처음 듣는 엄마의 순수했던 어릴 적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다가왔다.
점심을 먹었는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슈퍼에 들른 엄마는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하며 내게 물었다.
"아들, 저녁 뭐 먹고 싶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이미 엄마는 내 대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김없이 '국수'라고 말했다.
국수는 정말 좋다.
얼큰하고 시원한 멸치 육수에 흰색의 국수사리를 풀고
달걀과 채소를 얹고, 후추를 살짝 뿌리면 그 맛은 참을 수 없다.
후루룩 소리 내며 먹다 보면, 국수의 면발이 다 사라질 때 가장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사리 덩어리를 더 넣어주신다.
"할아버지도 국수를 제일 좋아하셨는데 똑같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또 나의 입맛을 맞추신다.
저녁에 국수를 먹으며 엄마는 계속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순수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머리칼이
아까보다 더, 돌잡이의 실처럼 새하얗게 보이는 것을 느낀다.
난 흰색의 음식을 참 좋아한다.
엄마와의 시간도 흰 국수 면발처럼 계속해서 떠올리며살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 소중한 순간들을 아쉬움으로 느끼기 싫어서
나는 또다시 국수사리 덩어리를 넣어달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