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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Feb 09. 2024

사랑을 수식하는 말들

「겹」, 김경미

나뭇잎과 뱀그물, 뱀그물과 거미줄, 거미줄과 눈동자, 혹은 구름과 모래들, 서로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듯 지독한 배신 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사랑의 사전을 살펴보면 다의어로 '아끼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강신주가 말했다.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 어려워하는 감정. 그래서 그 사람 대신 내가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신주의 강의를 듣고, 사랑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 의미도 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늘어난다면 관계에 거짓된 언어가 퇴적될 것이라는 묘한 불안 때문이었다. 대신 애인에게는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행동이 반드시 따른다. 행동 없이 외치는 사랑은 공허하다.  

 애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사실 애인이라고 칭하는 순간, 그 단어에 사랑이 있다)을 줄이고 나서는 사랑의 의미를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대신한다거나, 짧은 거리지만 데리러 간다거나, 여행을 떠난다거나 행동으로 애인과의 시간을 채워 넣으려 노력한다.

 "그냥 나는 내 감정에 공감해 주길 바랐어."

 그러나 행동에 가중치를 두면, 오류가 생긴다. 그러니 가중치를 조절하는 과정이 어쩌면 관계를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배신 밖에는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사랑이란 다채롭다. 행동만으로, 언어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는 것은 어쩌면 언어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무늬로 이어가는 사랑의 형태도 엄연하니까. 나는 오늘 어디에 가중치를 두고 살아갈까.


*국외 여행을 다녀오느라 연재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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