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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08. 2024

기다리는 마음

'사랑의 무기' (김남주 시집, 창비 1989)

사랑은


김남주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사랑은 새벽이슬과 같다. 이슬이 습도, 기온차, 맺힐 풀잎 중 하나라도 없으면 생기지 않듯, 사랑도 기다림, 봉사, 희생, 배려 중 하나가 없으면 맺히지 못한다. 사랑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과 같다. 무수한 조건 중 하나라도 문제가 된다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삐걱거리게 된다.

 기다림은 사랑의 본질적 요소다. 사람은 직립 보행을 하기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이때 부모의 보살핌이 없다면, 살아가지 못한다. 부모는 우리를 기다려 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다림이 말라가고 있다. 심지어 연인 간에도 폭력들이 발생하니, 우리는 얼마나 상대를 기다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맹목적으로 빨리빨리, 출세를 위해 살아온 우리들의 삶에서 '기다림'을 속성으로 한 사랑이 싹트기는 쉽지 않겠다. '왜'라는 질문도 우리에겐 '나중'이 되니 말이다.

 오늘은 누구 하나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지. 조금 늦더라도 '왜 저렇게 행동이 굼뜨냐고' 하기보다, 시처럼 느리게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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