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만큼 든든한 책 한 권 납시오
살로 가고 피로 가는 책 한 그릇 잡숫고
당당한 걸음으로 씩씩하게 세상과 맞서보오
호랑이 등줄기만큼 힘센 책 한 권 납시오
무릎 힘 풀리는 날에도 짱짱하게 버티는 힘이라
보약보다 더 좋은 것을 어찌 우리만 누리겠소
그라니 이리 오소 다 같이 놀아보오
책 손님으로 만났으니 '어머나'로 통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소
-이지선, <책방뎐> 중 '얼쑤 책방뎐'
애인과 여행을 가면, 계획을 짤 때부터 그 지역에 책방이 있는지를 살핀다. 여행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어떠한 삶들이 펼쳐지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하는 것이니, 여행로서는 책방만 한 곳이 없다. 책방에는 보일러 값도 안 나오지만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며 무너졌을 책방지기들의 마음이 녹아있다. 책방에는 인터넷에서 쉽게 주문할 수 있는 책을 번거롭게 방문하여 구매하는 독자의 애틋함이 녹아있다. 책방에는 지역 사람들이 관심 갖고 있는 책, 즉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나는 여행의 기본은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사람을 담은 책방이 늘 우선이다.
방학 동안에 애인과 갔던 서점은 '잘 익은 언어들'이었다.
"오늘 책방 열었나요?"
"네, 오시면 되고 주차는 서점 앞 공간에 하면 돼요."
책은 어디서나 살 수 있지만
사람은 어디서나 만날 수 없기에
-78p
책방지기는 우리를 보자마자 반가운 눈치로 말을 걸었다.
"독자의 서재라는 공간을 꾸몄어요. 여기 있는 책들은 전주 예술 마을에서 일하시는 분의 서재예요."
독자의 정성스러운 편지와 깔끔한 진열. 독자로 하여금 독자에게 책을 읽게 하는 이 연결성. 아이디어가 빛이 났다. 책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창의적 사고력이 책방 곳곳에 묻어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학생 독자의 추천 서재도 있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캐릭터를 그려놓곤 꾸밈없는 말로 써놓은 일기장.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 1등이 되는 법을 아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랴. 스스로 경험했던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것보다 중요하랴.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간다는 것은 더디지만 쌓이는 것들이다. 진실함 위에서 쌓이는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경쟁 위에 쌓은 모든 기억들은 어쩌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경쟁의 질서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다수 생겨난다면 말이다.
멋진 사장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어
힘들어도 '소신과 철학'을 지켜낸다는 것
-69p
책방지기들은 돈이 아니라 철학으로 먹고 산다. 자발적 가난이라고 할까. 가난을 수단으로 이야기와 삶을 파는 사람들이 책방지기들이다.
"겨울에는 보일러 비용이 나오지 않아서 쉬기도 해요."
추운 겨울날, 그 어떤 상점보다 얼어붙는 곳은 서점이다. 얼어붙은 곳에서 헐거운 마음을 데우려 책을 준비해 놓는 그들의 마음은 풍요로서의 가난이다.
나는 과연 가난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가난을 뚫어내고 나아갈 삶의 철학이 몸에 배어 있는가? 가난은 두렵다. 나는 매일 100만 원의 대출금을 갚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숨만 쉬는 것조차 돈이 드는 것인가.
그러면 왜 집을 샀느냐 그런다. 집 없이 또 어떻게 살겠느냐. 의식주가 삶의 기본 조건인데, 그럼 주만이라도 포기하고 살까? 세상은 왜 이렇게 포기하라는 게 많은지. 말은 열심히 살아서 가지라고 하면서, 은근히 포기로 등떠민다.
서점을 운영하면 숨 쉬는 게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서점이 해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삶은 자본의 논리만으로 뒷받침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담론이기 때문이다.
* 책방 '잘 익은 언어들'의 특징
1) 블라인드 책 판매
2) 책 예약 판매
3) 독자의 서재 운영 (다양한 단골들을 만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4) 월간 추천 서재 운영
5) 강연 프로그램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