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적 권위

탈무드 책 속 구절

by 이여름

나는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친구에게서도 많이 배웠고 심지어 제자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탈무드


가르침이라는 말은 태생이 모순인 것 같다. 나는 가르치면서 오히려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나는 오히려 그들의 순수함과 꿈, 의욕들을 배운다. 순도 100%의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르침은 배움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는 하브루타 공부법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려주면서 학습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때 토론 학원 열풍을 만들기도 했었다. 하브루타 공부법 역시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임을 알려주는 좋은 교육법이다.

가르치면서 나는 나의 부족한 점을 오히려 깨닫게 되었다. 말을 하려면,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내 모습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정리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정리하는 법을 알려줄 수 없었고,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배려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내가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며, 실천하지 않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부끄러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면서 1, 2학년은 선배 학년이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선배가 되었다고 권위를 세우려 몸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에게 따끔하게 지적한다. 선배의 권위는 거들먹거리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때 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배울 줄 아는 사람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모습이 경직되어 누군가에게 위엄 있어 보이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부서지고 무너질 것이다. 반면 부드러움과 자기 성찰 위에 쌓아 올린 권위는 튼튼하다. 법이 아니라 따스함으로 모범이 될 때,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알 때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따라가게 되는 사람이 된다. 그게 어른이고 선배고 선생님이다. 그러니 성찰하고, 부드러운 배려를 가진 이라면 그 누가 선생님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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