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노숙에 대한 소고, 그리고 반성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다시 테이블 밑을 내려다보았다. 타일 바닥 위에 놓인 나의 두 발 사이로 간간이 바퀴들이 지나갔다. 미국 바퀴벌레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모습에 잠이 모두 달아나버린 나는 커피는 입에 대 보지도 못한 채, 계산을 요청했다.
현금을 두고 온 테이블 위엔 핫도그와 커피가 그대로 있었다. 아까운 마음에 속이 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런 타일 위로 바퀴벌레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델리의 풍경은 나에게 너무도 큰 시각적 충격이었다. 갑자기 지난 뉴욕에서의 일주일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눈물이 나왔다. 오갈 데 없는 마음이 이렇게 서러울 줄이야. 천사 같은 언니가 마련해 준 따뜻했던 보금자리. 친구들이 데려가 준 벌레가 나오지 않았던 식당들, 펍에서 흘러나오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벽난로의 온기 같은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결국 다시 터미널로 돌아온 나는, 이제 반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긴장할 힘도 남지 않아 그저 빨리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을 뿐이다. 잠시 졸기도 하고 옆 사람에게 짐을 봐달라 부탁하고 화장실도 들락거리며,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마이애미로 넘어간 뒤, 이틀 동안 호텔방에서 끙끙 앓아야 했다.
당시 적어놓은 메모와 기억을 토대로 그때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담아보려 했다. 열한 시간, 그것도 처음 가보는 터미널에서 홀로 지새운 밤. 나름 진한 추억으로 남긴 했지만, 글을 쓰며 속속들이 들여다보니 그리 낭만적이지 않은 기억이다. 거위털패딩이 무색하게 온몸에 한기가 돌았던 터미널 내부, 지친 사람들의 하품과 한숨으로 가득했던 낯선 풍경, 몸 누일 곳이 없어 졸음과 사투를 벌였던 열한 시간. 그 어떤 부분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무턱대고 결정한 공항 노숙.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어리석을 정도로 무모했던 것 같다. 무계획 여행에 대한 로망과, 공항에서 밤샌다는 것에 대한 근거 없는 설렘(?)도 문제였겠지만, 무엇보다 정보숙지가 미숙했던 것이 컸다. 마지막 날, 잠시 머물 곳을 미리 예약해 두었더라면, 나는 반나절 노숙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혹은 미리 공항노숙을 염두하고 철저히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 최소한 덜 당황하고, 효율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했을 것이다. 나의 게으름과 쓸데없는 오기로 괜한 고생을 했고, 정작 1순위로 두어야 했을 출장 스케줄에도 지장이 가도록 만들어버렸다.
무계획 여행과, 준비성 없는 여행은 다르다. JFK에서 밤을 지새운 이후, 나는 어떤 여행을 하던, 모든 일정에 대해 꼼꼼히 준비를 해두려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며 대비하려 하다 보니 쓸데없는 걱정이 뒤따르기도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대책 없는 여행보다는 준비하는 여행이 나에게 맞다.
나름 여행도 많이 해보고, 다양한 상황을 겪어보았다고 자신했는데, 고작 반나절 노숙을 그리 힘들어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온다. 나의 능력치를 과대평가함으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과거의 후지고 창피했던 경험 또한 인정하고, 앞으로는 되도록 대책 없는 선택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돈을 아낄 때와 쓸 때를 잘 구분하도록 해야겠다.
무모한 도전의 여지를 주는 것 중 하나는, ‘기억의 미화’이다. 지난 일들을 실제 겪은 일 보다 더 낭만적으로 그린다던지, 힘들었던 부분을 축소하고 좋았던 부분 위주로 과장하는 것 말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여행기를 쓰지 못하더라도, 당시 내가 했던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는 것은 미래의 행보에 도움이 된다. 지나간 삶의 순간들을 미화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억을 되짚는 글쓰기를 꾸준히 해보려 한다.
2023년 8월 런던에서
인생 첫 공항 노숙을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