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멍청하게 꾸준한 게 문제다
학창 시절에도 보면, 오래는 앉아 있는데 영 성적이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반면, 별로 열심히 공부한 것 같지도 않은데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차라리 고고하게 물살을 가르는 백조가 사실은 물밑에서 부지런히 발차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안 보이는데서 노력이라도 했다고 하면, 덜 억울할 텐데. 분명 타고난 지능에 시험의 기술까지 갖추고 슬슬하기만 해도 성적이 나오는 친구들은 분명 존재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때부터 꾸준히 한다고만 해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대학 진학 후에는 학점을 잘 주는 과목을 쏙쏙 골라 들으며, 적은 노력으로 높은 학점을 얻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현명해 보였다.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뤄야 할 목표나 과업이 명확했다. 대학입학이나 취업과 같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쉽게 가는 것이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과정에서 만화 속 먼치킨 주인공처럼 단시간 내에 벼락치기로 뭔가를 얻어낸 건은 멋있어 보였고,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애써 뭔가를 이룬 것은 구차하고 초라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찍이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쏟아지고,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면서 평생을 벌어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사기 어려워졌다. 무언가 꾸준하게 모으고, 매진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거기에 관성적으로 하던 업무만, 하던 방식대로만 하길 바라는 소위 멍청한데 부지런한 꼰대들까지 더해지니 꾸준함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는 더욱 진해졌다. 역시 조금만 해보다가도 안 될 것 같으면 금방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리저리 될 것 같은 것만 골라서 하던 얌체들이 역시 성공하는 건가 싶었다.
근면하면 될 줄 알았던 10대를 지나, 성실함은 초라하다고 여겼던 20대를 거쳐, 꾸준함을 멍청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30대를 통과했다. 40대에 들어서니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분명 꾸준히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들여 꾸준히 쌓아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내공의 차이가 피부로 와닿았다.
커다란 로고 없이도 만듦새에서 단단함이 드러나는 명품의 아우라처럼, 오랜 경험과 배움에서 우러난 통찰과 전문성이 풍겨 나오는 그들을 보면서, 축적된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늦었을 때가 진짜 늦었을 때라고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뭔가를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올라왔다. 이 것 저 것 판을 벌려보지만, 이미 한참 앞서간 그들의 여유로움은 결코 따라갈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꾸준함에 대한 판단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근면성실함이나 꾸준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충분히 탐색하는 시간 없이, 맹목적으로 멍청하게 꾸준하기만 한 것이 문제였다. 꾸준한 게 멍청한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 차이는 축적된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