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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Jan 03. 2024

서점지기의 하루

에필로그 

새해의 시작과 함께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동물, 환경, 비건에 대한 책들만 모여 있는 작은 독립서점이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이곳에서 평일 12시부터 6시까지 서점에 상주하는 고양이 둘을 돌보며 책방지기로 지내게 될 것이다. 


비록 내가 주인은 아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 일찍 출근했다. 오픈 시간인 12시까지 가게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간판을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첫 손님은 강아지를 키우시고 책과 독립서점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는데 오늘은 또 어떤 분이 오실까? 기왕이면 손님이 많이 와서 퇴근길에 사장님께 즐거운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기도 하다.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의 오줌냄새가 진동을 한다. 두 녀석 중 누군가가 책장 아래 종종 스프레이를 한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로 이럴 줄이야. 소독약과 락스로 흔적을 벅벅 지우고 향을 피웠다. 그리고 재빠르게 창고로 가 화장실을 비워줬더니 서점에서 어느새 좋은 향기가 난다. 예전에 동물병원에서 테크니션 근무할 때도 출근 후 제일 먼저 하던 일인데 이걸 또 하고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잠시 그때 생각이 나서 웃었다. 


오동통한 고양이들의 이름은 고돌이와 치돌이. 길에서 생활하던 형제냥인데 사장님이 거둬주셨다고 한다. 

고돌이는 사람의 손길에 익숙하고 겁도 없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자신의 엉덩이를 기꺼이 내주는 편이지만 치돌이는 아직 내가 움직이기만 해도 눈을 번쩍 뜨고선 경계하기 바쁘다. 되도록이면 자고 있는 치돌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멀리 빙 돌아가 청소를 했다. 밤새 서점에 내려앉은 먼지들을 걷어내고 고양이들이 긁어놓은 스크래쳐의 잔재도 쓸어 담았다. 그릇을 헹궈 사료와 물까지 담아주니 딱 12시. 

뿌듯한 마음으로 간판을 정성스레 내놨다. 


워낙 정체성이 확고하고 작은 서점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오시는 분들도 인터넷 검색 후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긴, 나도 이곳에 그렇게 처음 왔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여기서 일할 줄은 몰랐지만. 


고돌이와 함께 난로 곁에 앉아 오늘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적어 보았다. 

독서, 연재 시 쓰기, 글쓰기, 독서 2, 정리정돈&애들 밥 주고 퇴근. 

집과 카페를 왔다 갔다 하며 하던 이 일들을 돈까지 받으며 할 수 있다니. 더욱 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읽을 책과 노트북, 다이어리, 텀블러까지 알차게 챙겨 왔다. 뭔가 집에서 할 때는 마냥 노는 것만 같아서 죄책감도 들고 지루하기도 했는데 밖에 나와서 그것도 예쁘고 분위기 좋은 서점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꿈꾸던 삶을 사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서점 매출과 내 삶이 관계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서점에서의 일들도 종종 브런치에 올려보려고 한다.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고돌이와 치돌이 모두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지금 같은 시간엔 내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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