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대부분을 즉흥적으로 직감에 따라 살아왔지만 요즘의 나는 노년의 삶을 계획하곤 했다.
중년도 아닌데 노년을 준비한다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의 안정화가 중년의 안정, 노년의 안정까지 보장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평생직장은 없고 많은 이들이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듯 들리는 소리겠지만
20대를 프리랜서나 다름없는 계약직, 30대를 자영업자로 불안하게 보내면서 생긴 로망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연유로 평생 하지 않았던 공부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방향의 일이고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긴 하지만 60세까지 매일 같은 업무를 하면서 해고당할 일도 없고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일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박봉과 발령이 어디로 날지 모른다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걸 해야만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다짐을 하던 와중에 어젯밤 꿈을 꾸었다.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내가 보였다. 여러 후보들 중 안정감 부문에서 탈락해 저 멀리 밀어둔 일이었다. 꿈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내 꿈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쫓기고 사고가 터지고 당황해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조금 지치고 허탈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분명히 웃고 있었다.
새벽녘 잠에서 깬 뒤에도 그 행복감은 오래 남았다.
정오가 지난 지금도 그 꿈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진다.
삶이란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옳은 것일까. 곧 마흔을 앞둔 이 나이가 되면 모든 게 명확해질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20대에 이런 생각을 미리 좀 해봤으면 좋았을걸...)
나를 아끼는 이들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는 희미한 경계가 있다. 누군가는 그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한쪽을 명확히 선택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경계선 위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결정을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이를 어쩐담.